“아닌 건 아닌 겨”... ‘오케이 광자매’ 엄마들 이건 아니라고 봐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아닌 건 아닌 겨.” KBS 주말드라마 <오케이 광자매>에서 이철수(윤주상)의 이 말은 유행어처럼 되었다. 이 말 뿐이 아니다. “이건 아니라고 봐.”라는 말도 말 중간 중간에 구체적인 표현 없이 “저기”라고 습관적으로 붙이는 말도 그렇다. <오케이 광자매>라는 주말드라마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적어도 이철수의 이 말들은 그 캐릭터 특유의 짠내 나는 표정과 더불어 이모티콘의 짤로 인기를 끌만큼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사실 <오케이 광자매>의 스토리는 너무 구닥다리다. 과거 흔한 드라마 투르기의 상투적인 공식들이 넘쳐나서다. 이 드라마가 쓰는 공식은 불륜, 불치, 비밀, 거짓말, 혼사장애, 출생의 비밀 등등 이미 너무 많이 가족드라마들을 통해 사용됐던 것들이다. <오케이 광자매>가 이런 공식들을 쓰면서도 조금 다르게 보이는 건, 공식의 수위가 높아서다. 모든 공식들이 거의 다 들어 있는데다가, 연달아 터져 나오니 드라마를 보는 내내 ‘지지고 볶는’ 이야기에 시청자들의 복장이 터진다.

찌질한 삶과 민폐 캐릭터는 문영남 작가의 세계라고 해도 될 만큼 그의 전작들에서 일관되게 그려졌던 것들이다. 그래서 그것이 공식이라고 해도, 거의 모든 인물들 속에서 찾아내지고 펼쳐질 때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사는 모양이 아닌가 하는 그런 메시지로 읽혀지기도 한다. 다만 지금의 시청자들이 이런 공식과 더불어 ‘고구마’ 가득한 이야기에 공감하고 호응할 지는 미지수다. 그잖아도 답답한 현실에 드라마에서라도 사이다를 원하는 시청자들에게 ‘지지고 볶는’ 고구마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주말드라마라니!

그래서 <오케이 광자매>는 기분 좋은 시청으로 보기보다는 얼마나 뒷목을 잡게 만드는 사건들이 계속 터지는가를 복장 터져가면서도 보는 드라마다. 일반적으로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고 표현되지만, <오케이 광자매>는 그 안에 희화화되고 과장된 캐릭터들을 통한 웃음과 풍자 코드도 심어 놓았다. 그래서 초반에는 열나게 만드는 캐릭터들이 뒤로 갈수록 그 자체로 희화화되어 점점 익숙해지고 나아가 웃음을 터트리는(헛웃음일지라도) 상황이 발생한다.

그 대표적인 캐릭터가 바로 이철수다. 문영남 작가는 <왜그래 풍상씨>에서부터 동정 가는 남자 캐릭터를 그렸고 <오케이 광자매>도 그 바통을 이어받고 있다. 아빠들은 동정이 가고 엄마들은 화가 날 정도로 이상하다. 이철수의 아내가 사고로 죽은 후 딸들이 모두 아빠를 의심하고 절교하듯 살아가는 것으로 시작한 드라마는, 결국 아내가 바람이 났고 보험금을 노리고 타이어에 바람을 뺐다가 사고가 났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오해받고 버림받았던 이철수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그건 아내의 바람 때문에 이철수가 겪은 삶의 비극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사우디 파견 근로자로 뼈 빠지게 일해 보낸 돈을 아내는 바람피우는 데 홀라당 날려버렸고, 심지어 야밤에 문을 잠그고 캬바레를 가는 바람에 불이 나 아들이 사망했다. 게다가 광태(고원희)의 친아빠라는 사람이 등장했는데, 알고 보니 광태는 그 남자와 바람이 났던 아내가 낳은 아이였다. 이러니 이철수가 입에 달고 다니는 “아닌 건 아닌 겨”나 “이건 아니라고 봐”라는 말이 그저 웃기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얼마나 아닌 상황들을 겪었으면 이 말들이 습관처럼 입에 붙었을까.

이상하게도 <오케이 광자매>에는 엄마라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그려진다. 바람이 나 자식도 죽게 만들고 가산 탕진하고 밖에서 딸을 낳아 데려오기까지 한 광자매들의 엄마도 그렇지만, 이름부터가 지풍년(지랄도 풍년이란 뜻이다)인 배변호(최대철)의 엄마(이상숙)도 그렇다. 아들의 불륜으로 아이까지 갖게 되어 이혼했던 며느리 광남(홍은희)이, 아이 엄마가 죽고 나서 아들과 재결합했지만 사사건건 아이 엄마와 며느리를 비교하며 상처 주는 시어머니다. 요즘 세상에 저런 시어머니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과장되어 있는 이 인물은 매회 지나칠 정도로 광남을 구박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뒷목 잡게 만든다.

엄마들이 한 마디로 ‘지랄도 풍년’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반면 아빠들은 너무나 불쌍하고 연민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철수도 그렇지만, 그가 아끼는 동생이자 한예슬(김경남)의 아빠인 한돌세(이병준)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는 아빠다. 평생을 좋아했던 오봉자(이보희)와 결혼을, 아들의 결혼을 위해 포기하는 인물이다. 오탱자(김혜선)와 변공채(김민호)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오뚜기(홍제이)의 엄마 오탱자는 젊어서 변공채를 꼬드겨 하룻밤을 보낸 후 돈을 갖고 튄 인물이지만 뒤늦게 그를 만나고 오뚜기가 자신의 딸이라는 걸 알게 된 변공채는 엄청난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어째서 문영남 작가는 아빠와 엄마를 이토록 극단적으로 대비해서 그려내고 있을까. 주로 가부장적인 아빠와 순종적인 엄마의 구도를 담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구도를 바꿔 지랄도 풍년인 엄마와 동정과 연민 가득한 아빠의 구도를 세우는 것이 달라진 시대를 반영한다 할 수 있을까. 구도만 바뀌었을 뿐, 시대착오적인 갈등 구조가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그나마 이 드라마를 계속 보게 만드는 유일한 힘은 그 지지고 볶는 상투적 관계 속에서 뒷목을 잡다가도 희화화된 인물들 때문에 만들어지는 웃음 덕분이다. 상투적이지만 그 비극을 과장되게 그려 한 걸음 떨어져서 보게 만들고 그래서 희극으로 느껴지게 하는 데서 나오는 웃음. “아닌 건 아닌 겨”, “이건 아니라고 봐”라고 말하는 이철수의 대사나, 진짜 지랄도 풍년인 인물의 이름이 ‘지풍년’이라는 비꼬는 시선이 만들어내는 희비극. 이것이 욕하면서도 보게 되는 <오케이 광자매>의 동력이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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