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재미를 예능으로... tvN 예능의 새 경향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tvN 새 예능 프로그램 <라켓보이즈>는 여러모로 SBS 드라마 <라켓소년단>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라켓보이즈>에는 <라켓소년단>에서 정인솔 역할로 출연했던 김민기가 출연진으로 등장했다. 물론 그렇다고 <라켓보이즈>가 <라켓소년단>의 스핀오프 성격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드라마와의 연계성(이를 테면 주요 출연자들이 여럿 출연한다거나)이 약하고, 무엇보다 스포츠예능의 특징을 더 내세우고 있어서다.

하지만 배드민턴을 소재로 하고 있고, 그 스포츠의 묘미를 담고 있는 건 드라마나 예능이나 크게 다르진 않다. 감독으로 출연한 이용대 선수는 <라켓소년단>에서도 특별출연을 한 바 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보면 <라켓보이즈>의 기획의도는 <라켓소년단>의 스핀오프라기보다는 배드민턴의 저변을 알리고픈 이용대 선수의 진정성에 오히려 더 있다고 보인다. 그가 <라켓소년단>에 출연한 것도 같은 이유였을 테니 말이다.

<라켓보이즈>는 최근 들어 JTBC <뭉쳐야 찬다>나 SBS <골 때리는 그녀들> 같은 스포츠예능이 하나의 트렌드를 이루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프로그램이다. 배드민턴이라는 소재의 매력은 이미 KBS <우리동네 예체능>이나 <축구 야구 말구>에서도 충분히 검증된 바 있다. 그렇지만 <라켓소년단>이라는 드라마가 만들어낸 배드민턴에 대한 관심 또한 영향을 주지 않았다 보긴 어렵다.

<라켓보이즈>처럼 최근 들어 tvN 예능 프로그램들이 드라마와 썸을 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공교롭게도 <해치지 않아>는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스핀오프 같은 성격을 갖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국가대표 빌런들의 본캐 찾기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달린 이 예능 프로그램은 <펜트하우스>에서 막강한 빌런들을 연기했던 엄기준, 봉태규, 윤종훈이 드라마가 끝난 후 고흥으로 내려가 그 곳에 마련된 아지트(?)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을 담았다.

사실상 아지트가 버려진 폐가였고, 그래서 그 집에 장판을 새로 깔고 문풍지를 바르고 정원 가득 웃자란 풀들을 베는 이들의 모습은 <펜트하우스>의 화려했던 캐릭터들과는 상반되는 ‘폐가하우스’의 이야기로 웃음을 줬다. “이게 무슨 힐링이야”라거나 “뭐 이런 그지 같은 프로그램이 다 있어”하며 과노동에 지쳐 툴툴대는 이들은 차츰 그 곳에 정착해가며 소박한 시골살이의 행복감을 <펜트하우스>에 출연했던 동료배우들을 손님으로 맞으며 경험해간다.

자극적이고 심지어 황당하기 까지 했던 <펜트하우스> 속 빌런 캐릭터들이 배역에서 빠져나와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선을 잡아끌고, 때때로 그 배역을 상황극으로 가져와 나누는 농담들이 스핀오프 프로그램의 묘미를 만든다. 화제가 됐던 드라마의 캐릭터를 예능으로 소환해 또 다른 재미를 만들어낸 영리한 선택이다.

물론 드라마 캐릭터들이 예능으로 소환된 건 이미 tvN 나영석 사단이 일찍부터 시도해왔던 것들이다. <응답하라 1994>가 성공을 거뒀을 때 거기 출연했던 유연석, 차선우, 손호준이 <꽃보다 청춘> 라오스편에 출연한 바 있고, <응답하라 1988>이 성공한 후 류준열, 고경표, 안재홍, 박보검이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편에 출연한 바 있으니 말이다.

최근에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종영 후 그 아쉬움을 채워주기 위해 나영석 사단의 <슬기로운 산촌생활>이 방영 중이다. 조정석, 유연석, 정경호, 김대명, 전미도 5인이 강원도 산골의 외딴 집에서 삼 시 세 끼를 챙겨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과정을 담은 이 프로그램은 그래서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삼시세끼> 산촌편의 콜라보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라켓보이즈>, <해치지 않아> 그리고 <슬기로운 산촌생활>까지. 최근 tvN 예능 프로그램들이 드라마와 공조하게 된 건 그만한 효과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프로그램의 대박 성공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3%대 이상 많게는 6%대까지 시청률을 내주는 중박을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런 드라마의 힘을 얹는 방식이 너무 ‘안전해 보이는’ 선택으로 보이는 면은 있다. 그만큼 새로운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도전이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라켓보이즈>의 경우 <라켓소년단>보다는 스포츠예능의 방식을 그래도 가져왔다). 하지만 모든 예능 프로그램들이 모험적 시도를 할 필요는 없고 이미 스핀오프나 퓨전 같은 방식 또한 예능 제작의 괜찮은 선택지로 자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남는 아쉬움은 있다. 최근 벌써 시즌3를 앞두고 있는 <바퀴 달린 집>처럼 배우들을 활용해(드라마와의 연계성이 당연히 생긴다) 여행을 떠나 밥 해먹고 토크하는 방식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배우들의 또 다른 면을 본다는 일종의 팬 서비스 같은 점은 분명 있지만 나영석 사단이 해왔던 일련의 예능 프로그램의 틀을 반복하고 있다는 혐의는 갈수록 짙어진다. 특히 tvN 예능에서 이런 안전한 선택들이 유독 도드라지는 건 우연이 아닌 것처럼 보이며, 자칫 퇴행적 양상을 보일까 우려되는 면도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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