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산생’ 통해 본 요즘 드라마가 안녕을 전하는 방식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나영석 사단의 새 예능 tvN <슬기로운 산촌 생활>의 출발은 새롭지 않지만 설렌다. 과거 드라마 촬영 마감 후 납치하듯 해외여행을 떠난 <꽃보다 청춘>의 파격적인 설정은 리얼리티의 재미를 추구하고, 일상 현실과 완벽한 단절을 추구하기 위한 기발한 예능 장치였다. 그런데 오늘날과 같이 IP의 중요성이 더욱더 강조되는 시대에 들어서면서 드라마를 예능으로 스핀오프하는 기획의 선견지명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이것이 늘 뻔하다는 나영석 사단의 진가이며 오랜 기간 흥행을 이끌어온 이유다.

새로운 예능에 대한 도전은 나영석 사단의 명성을 높이는 하나의 이유다. 유튜브 채널과 방송 두 가지 플랫폼을 오가며 프로그램 단위가 아닌 IP의 핵심인 세계관을 물리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꽤나 탄탄하게 구축했다. <슬기로운 산촌 생활>은 그 연장선상에서 IP를 중심으로 전환된 콘텐츠 기획의 산물이다. 나영석 사단이 운영하는 채널 십오야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중요한 홍보 파트너로서 드라마 시작 전부터 캠핑을 소재로 한 스핀오프 예능과 <출장 십오야> 등을 통해 분위기를 지폈다. 방송 중에도 다양한 관련 콘텐츠와 카메오 출연으로 활발한 지원사격을 활발히 했다. ‘99즈’와 나영석 PD의 콜라보 또한 <슬의생> 방송 전 김대명과 신원호 PD가 출연한 채널 십오야 라이브를 통해 이미 어느 정도 예고된 바 있었다.

<슬기로운 산촌 생활>은 드라마의 여운과 캐릭터를 그대로 옮겨왔다. 신원호 PD 드라마의 특징인 시트콤 특유의 다인원 주연 체제는 예능의 캐릭터쇼에 옮기기 무척 수월하다. 좋은 의사들이었던 극중 캐릭터는 좋은 사람들의 모임으로 이어진다. 신규 프로그램이지만 익히 알고 있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다 보니 드라마 시청자들을 아무런 소개가 필요 없이 그대로 흡수할 수 있었다. 그 결과는 시청률로 바로 나타났다. 1회부터 일부 예능팬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은 <식스센스2>의 평균 시청률의 두 배를 상회하는 6.7%를 기록했다.

최근 방송을 시작한 <펜트하우스>의 남자배우들이 함께하는 tvN의 <해치지 않아>도 비슷한 케이스다. 편성표를 넘어서서 하나의 IP를 중심으로 기획을 이어가는 사례다. 채널이나 플랫폼을 넘나드는 이런 스핀오프들은 하나의 세계관을 확장하거나 시효를 연장해 나가는 요즘 시대의 연속극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아시아권의 새로운 한류 스타로 급부상한 조정석을 비롯해 <슬의생> 멤버들을 더욱 친근하게 만날 수 있는 콘텐츠다보니 <삼시세끼>에 익숙하지 않는 해외 시청자들에겐 굉장히 새롭고 이국적이며 매력적인 콘텐츠로 다가갈 여지가 많다.

마지막 촬영이 끝난 지 6시간 후 정선의 어느 길 위에서 이들의 산촌 생활은 시작된다. 떠나는 설렘, 준비과정의 어수선한 귀여움 등은 생략됐지만, 정선의 두메산골의 자연에 심취하고, 작은 소동 속에서 ‘팜 투 테이블’ 식의 슬로푸드 요리를 함께해서 둥그런 밥상에 다 같이 둘러앉아 따뜻한 온기를 나눈다. 멍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시골집 풍경, 노을과 밤하늘과 능선의 안개 등이 만드는 현실을 잠시 떠나왔음을 자각하게 만드는 공기는 로망을 전하기 충분하다.

역시나 특별한 일은 없다. 풍광이 끝내주는 시골집에 도착해 힘 모아 천막을 치고, 아궁이를 설치하고 두 끼 해먹은 게 1회 로그라인의 전부다. 불안의 전조를 암시하는 편집이나 “힐링하는 거 맞죠?”라는 조정석의 한마디는 전개를 쉬이 예측하게 한다. 여기에다 <슬의생> 캐릭터의 역할과 성향이 이어지는 ‘티키타카’도 드라마를 옮겨왔다. 드라마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조정석의 기타 반주에 맞춰 각자의 목소리를 쌓아 화음을 만들고, 추억의 공기놀이를 하고, 술도 한잔씩 하면서 밤이 늦도록 소중한 경험에 대해 나누는 진솔한 대화는 출연자들의 말 그대로 진짜 대학친구들이, 20여 년 지기들이 함께 놀러온 듯하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드라마 속 세계관을 공유했던 대중들에게 이들의 산촌 여행이 참 부럽게 다가온다. 함께하는 좋은 사람들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로망, 작은 성취들이 빚어내는 힐링의 대리만족을 나영석 사단은 역시나 다시 한 번 선사한다.

그러나 IP의 시대 예능의 선구자로 치켜세우기에 아쉬움도 있다. IP의 확장이란 차원에 걸맞은 도전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익숙한 포맷이 주는 재미와 정서는 익숙한 그대로다. 물론, 그 안에서 돈독한 관계, 좋은 사람을 보여주는 스토리텔링 기법이 워낙 출중해 대중들을 불러 모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게스트를 부르고, 동물을 의인화하고, 성장 서사를 덧붙이는 등등 변화와 색다름을 주려고 노력했던 지난 모습들이 보이지 않는다.

3일 촬영하기로 정해져 있는 만큼 이벤트성 체험에 가깝다는 현실이 시공간을 초월한 공간의 울타리를 낮추는 건 어쩔 수 없다. 진정성이 화두인 오늘날 이들이 나누는 진솔한 대화와 감정이 특별한 울림을 만들지 못한다면 <슬기로운 산촌 생활>은 반복된 볼거리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힐링과 슬로라이프, 자연과 좋은 사람들이란 코드로 만들어가는 이야기의 유통기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보지만, 비교적 짧은 시간, 오랜 기간 축적된 성공공식을 포맷화한 콘텐츠는 자연스러움보 잘 만들어졌다는 평가가 더 적합해 보인다. 물론, 보다보면 미소를 띠며 보게 된지만, 왠지 입 안 한 쪽에서 밀키트로 만든 요리를 맛본 기분이 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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