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숲’·‘라이프’ 웰메이드 이연수 작가의 성공적인 귀환(‘그리드’)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역시 <비밀의 숲>, <라이프>의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는 이수연 작가다.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그리드>로 돌아온 이수연 작가는 특유의 눈을 뗄 수 없는 스토리로 단번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일단 한국드라마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은 우주와 전 지구를 대상으로 하는 세계관 자체가 독특하다. 태양의 흑점폭발로부터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창설된 일종의 보호막인 ‘그리드’와, 이를 운용하는 전 세계의 비밀 조직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그리드를 탄생시키고 사라져버린 미지의 존재 ‘유령(이시영)’이 있다.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지는 ‘순간이동’을 하는 이 존재는 24년 만에 한 살인마의 공범으로 새롭게 나타나고, 그를 추적하는 그리드 관리국 직원 김새하(서강준)와 형사 정새벽(김아중)이 등장한다.
공개된 첫 회를 보면 아직 본격적인 스토리가 나오지 않았지만 궁금증을 끝없이 자극하는 이수연 작가 특유의 필력이 돋보인다. 즉 그리드 관리국이라는 색다른 조직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물론이고, 거기서 일하는 김새하가 상관인 부국장(장소연)의 쓰레기통을 비우는 척 그를 감시하는 모습은 그가 무언가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는 걸 의심하게 만든다.

게다가 김새하의 어머니가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야 할 상태에 놓여있고, 입 모양으로 무슨 말을 하는 지를 읽는 구순술을 할 줄 아는 인물이라는 점도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결국 김새하와 정새벽이 미스터리한 인물인 유령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리겠지만, 그 과정 속에 끊임없이 인물과 스토리에 대한 궁금증을 던져 넣는 이수연 작가 특유의 전개방식이 몰입감을 높이고 있는 것.
다만 아쉬운 점은 <그리드>가 이러한 깊은 몰입감을 선사하는 작품이면서 어째서 OTT 시청의 새로운 방식으로 자리 잡은 ‘몰아보기’ 공개를 선택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드>는 전체 10부작으로 매주 수요일 단 한 편씩만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장르물이고 그것도 이야기의 흐름이 끊이지 않아야 더 깊은 몰입감을 느끼며 빠져 들어갈 수 있는 <그리드> 같은 작품을 이렇게 나눠 공개하는 게 과연 효과적일 지는 의문이다.

디즈니 플러스는 한국드라마 오리지널을 대부분 일주일 단위로 나눠 공개하는 방식으로 선을 보여왔다. <설강화>가 그랬고, 현재 방영중인 <너와 나의 경찰학교>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그리드> 역시 그 흐름을 그대로 이어온 공개 방침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최근 OTT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의 새로운 시청 패턴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 공개가 아닐 수 없다.
방침이 그렇다 해도 <그리드> 같은 장르물이 이렇게 뚝뚝 끊어지는 방식으로 공개되는 건 아쉬움이 크다. 그건 디즈니 플러스 같은 후속 OTT가 그 플랫폼의 존재감을 단기간에 극대화하는 데는 좋은 선택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건 우리네 지상파 시절의 공개 방식을 OTT 시대에도 여전히 고수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디즈니플러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