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대한민국 예능 역사에 남을 키워드 셋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2022년은 예능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OTT발 연애 예능이 범람하고 장수 예능의 고착화가 두드러진 가운데, 연초 경제 전망이 무색해진 작금의 상황처럼 지난 수년간 큰 인기를 누렸던 경연 예능이 가라앉았다. 그럼에도 12월 시작한 트로트 대전을 비롯해 음악 경연 예능은 내년에도 계속 편성될 예정이다. 이는 반등을 기대할 요소가 많아서라기보다 OTT와 웹예능 대비 기존 방송사들이 비교적 우위를 가진 분야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올해의 예능’을 꼽기가 난감하다. 지난 십여 년간 예능은 외연을 확장하며 압축 성장을 해왔다. 하지만 2022년 편성된 방송 예능 중 완전히 새로운 세대와 성별의 예능 선수를 발굴한 tvN <뿅뿅 지구오락실>을 제외하고는 유의미한 경향을 만들어낸 프로그램이 딱히 없다. 여행 예능은 성장 없이 해동된 상태로 나타났고, 지난 2년 간 이어지다보니 스포츠 예능과 경연 예능의 진정성 코드는 무뎌졌다. 그 덕분인지 지상파 3사의 연예대상은 한해 예능의 경향을 파악하거나 총결산하는 역할에서 더욱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2022년의 예능은 정말로 정체의 위기를 겪은 것일까? 시야를 넓히고, 예능의 카테고리를 방송 편성표 밖으로 확장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방송 예능에는 적색 경고등이 켜졌지만, IP콘텐츠로서 예능의 가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새로운 시도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TV매체가 주춤하는 건 우리만의 사정이 아니다. TV문화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도 방송 및 케이블TV 시청량을 OTT 서비스가 앞질렀다. 특히나 미국의 대표 채널인 NBC가 처음으로 방송사의 영향력과 수익성을 상징하는 ‘프라임타임’ 축소를 꺼내들었다.

우리 방송 예능의 경우 기획은 웹예능의, 규모와 완성도는 OTT 콘텐츠 뒤로 내려섰다. 티빙 <환승연애>, 넷플릭스 <솔로지옥>으로 대표되는 OTT발 연애 예능에 편승했고,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나 SBS <순정파이터> 등 웹예능의 일부를 차용하거나 벤치마킹한 프로그램들이 나타났다. 이런 사정을 공유하면서 2022년 예능을 정리할 키워드를 살펴보자.

첫 번째는 비연예인 출연자다. 연애 예능으로 인한 특수가 아니다. 십여 년 전 예능이 시청자들과 정서적 유대를 중시하는 콘텐츠로 재정의된 이후 리얼리티(진짜), 진정성은 모든 예능의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비연예인 출연자는 등장만으로 ‘진짜’라는 진정성을 직관적으로 담보한다. 예전엔 예능선수들의 실제 친분을 방송에 접목했고, 그다음으로 배우들의 인간적 매력과 스타들의 일상을 조망하면서 판타지를 가미했다면, 이젠 아예 낯설지만 신선한 비연예인이 그 자리를 대신해 이 콘텐츠의 모든 내용이 리얼임을 강조한다.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 등에 익숙해진 탓에 거부감도 대폭 줄었다.

이들의 등장과 활약은 예능의 발전사를 따라가다 보면 필연적인 면이 있다. 예능은 점점 스토리텔링이 강조되는 형식으로 변화하고 있고, 예능의 서사는 허구의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드라마나 영화와는 달리 출연자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비연예인 출연자가 등장하는 콘텐츠는 이혼, 결혼 등등 누군가의 실제 삶의 흔적과 인생의 단면으로 설정과 설명을 대신한다. 출연료는 훨씬 저렴한데, 여러 방송에서 얼굴을 비춰온 연예인들이 절대로 보여줄 수 없는 생생함을 갖고 있다. SBS가 <골때녀>의 멤버들로 연애 예능을 내놓았다가 처절한 전술적 실패를 경험한 이유다. 프로그램이 끝나도 그들의 삶은 SNS에서 계속된다. 이런저런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진짜’이기에 그들의 감정과 상황에 쉽게 몰입하게 되고, 실제 누군가의 모습이기에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심리 효과를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많은 예능 선수들은 어디로 갔을까? 유튜브 채널을 팠다. 이것이 두 번째다. 아이돌이 그랬고 배우들이 그리하고 있듯 김구라, 박명수, 김종국, 유재석, 기안84, 지석진, 정재형 등등 유명 예능인부터 무명의 코미디언들까지 많은 이들이 최근 2~3년간 유튜브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대부분 기존 방송에서 하지 못한 도전적인 시도와 ‘진짜다움’을 콘셉트로 내세운다. 가볍고 친근하게, 작은 도전으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며 방송에서 보여주지 못한 인간적인 모습, 친근함을 드러낸다.

일상 브이로그, 촬영 비하인드를 비롯해 소소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니 기존 방송 콘텐츠를 제작하는 입장에서 경쟁 상대라기보다 보완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콘텐츠들이 해당 아티스트의 본진이 되어 향후 관찰 예능이나 리얼 버라이어티의 대체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시청자와 쌓는 친밀감 측면에서 기존 프로그램과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재형의 라이프 스타일을 엿보기에는 MBC <전참시>보다 개인 채널이 훨씬 자세하고, 기안84와 <나 혼자 산다>의 오랜 팬이라면 현행 방송보다 기안84, 한혜진, 이시언 등의 유튜브 채널에서 관계를 맺고 보여주는 모습이 더욱 와 닿는다.

지난 11월에는 유재석이 유튜브를 시작했다. 과거 지상파에서 케이블TV로, 다시 종편으로 넘어가는 데도 최후의 1인으로 남았던 그이니 여러모로 상징적인 행보다. 역시나 자연스러움과 가벼움을 내세우고 단촐한 세팅부터 방송 환경과 다른 친밀한 분위기를 지향한다. 엄청 새로운 내용은 없었지만 기대감에 반응이 폭발했다. 김종국의 채널 ‘짐종국’에 지석진과 함께 출연한 회차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흐름은 결국 연기자가 출연자이자 PD 즉, 크리에이터의 영역을 겸해야 한다는 결론과 마주하게 된다. 불러주는 방송이 없어 스스로 팟캐스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가 최근 상암동에 사옥을 올린 송은이의 케이스가 이제 모두 앞에 열린 셈이다.

마지막은 한국 코미디의 새로운 지평이다. 백상 예능우수상을 수상한 이용진으로 대표되는 웹예능은 방송 예능과 달리 괄목할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주목해서 지켜볼 부분이 한국의 젊은 코미디언들이다. 그들은 광야로 나아가 방송가에서 멸종한 코미디의 생태계를 새롭게 만들어냈고, 안전한 생태계라는 것까지 증명해냈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생태계를 이룬 방식이다. 기존의 방송 예능이나 인터넷 1인 방송에서 넘어온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를 기반으로 삼지 않았다. 구조가 탄탄한 서사 위에 동시대의 공기를 머금은 캐릭터를 개발하고 연기하는 미국 코미디 산업에서 나올법한 유형의 코미디를 시도했다. <피식대학>, <빵송국>, <숏버스>, <나몰라 패밀리> 등이 소속된 코미디 전문 레이블 ‘메타코미디’를 축으로 유튜브에서 꽃을 피운 새로운 세대의 코미디는 우리가 지금껏 방송으로 보던 외모와 끼, 에너지레벨, 인맥, 토크 등 기성 코미디와 접근이 다르다.

주현영을 비롯해 연기력을 기반으로 한 코미디를 한국SNL팀이 꾸준히 보여주고 있고, 과거 유세윤과 뮤지의 사례부터 얼마 전 ‘부캐’의 대유행도 있었지만, 이들이 만드는 세계관은 ‘문화적으로 꽤나 진지’하다. 일상의 페이소스부터 다양한 서브컬처를 기반 삼아 문화적 맥락을 비틀고, 문화코드의 변주를 통해 웃음을 만드는 한국 방송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던 스타일의 코미디다. 한마디로 샌드백 역할 하는 동료 없이 웃음을 만들어낸다. 특히 ‘신도시 아재들’, ‘피식쇼’를 비롯한 <피식대학>의 유사 패러디물들은 뭔가를 알아야 웃길 수도, 리액션할 수도 있는 문화적 깊이와 취향이 짙다. 최근 대세로 등극한 다나카상의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고도의 관찰과 고감도의 번뜩임으로 다져진 탄탄한 구성 위에 엄청난 재능을 가진 연기자들이 앙상블을 이루는 코미디극은, 티나 페이를 위시한 미국 SNL 작가 출신 연기자들의 활발한 활동과 주드 아패토우로 대표되는 미국 코미디 영화의 중흥기를 떠오르게 한다. 미국의 작가 출신 코미디언 연기자들처럼 크리에이터(작가)의 면모와 역량이 더욱 두드러진다. 그 덕 때문인지 지난 몇 년간 안주하지 않고 개발과 변화를 거듭했다. 처음에는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대안적 시도였다면, 지금은 우리 예능의 현재이자 미래의 한 기둥임이 뚜렷해졌다. 그리고 이들은 방송 편성이 더 이상 예능 콘텐츠를 모두 담기엔 부족한 그릇이 되어버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플랫폼이 급변하고 TV의 위상이 급락하면서 예능 콘텐츠를 둘러싼 많은 것이 변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예능이 북극성으로 삼은 진짜(리얼리티)의 추구다. 진정성을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비연예인 콘텐츠, 방송보다 격의 없는 친밀한 소통을 내세우는 유튜브 채널 모두 ‘진짜’를 향한 예능의 이정표 앞에서 만난다. 리얼리티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작법 또한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 연기를 통해 보여주는 ‘진짜’는 과장되었지만 포인트가 도드라지고 기발한 탓에 웃을 수 있다. 그리고 리얼리티를 담는 방식이 극화까지 왔기에 라이브 스트리밍 형태의 방송이 점점 더 가까이서 어른거린다. 친밀감에 있어서 생방송이 주는 매력은 그 어떤 포맷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22년 한해에 모두 나타난 일이 아니다. 시간이 쌓이면서 2022년에 확인한 예능의 가능성이다. 기존의 기준으로 보면 암울할 뿐이겠지만, 방송을 벗어나 예능을 바라보면 다채롭고 활기차다는 걸 알 수 있다. K-콘텐츠의 붐 덕에 OTT발 총알도 아직 충분하다. 공채 출신 국민MC들과 능력 있는 정규직PD들이 명함을 새롭게 파고 콘텐츠 제작자, 크리에이터로 전환하는 추세다. 2023년에는 이 진짜를 찾는 여정이 어디까지 가닿을까. 예능 팬 입장에서 2023년에 찾아올 예능 콘텐츠들이 더욱 더 기대가 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유튜브, tvN, 쿠팡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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