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이네’, 시리즈의 핵심 윤여정 없이도 성공한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tvN 예능 <서진이네>는 더 이상 7년 전 발리에서 시작한 <윤식당>의 소박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우리의 스타와 맛이 해외에서도 통할지 지켜보는 ‘리셋’의 설정도 내려놓았다. 손님들은 바에 살짝 비친 식당 직원을 보고 ‘아시안 뷰티’라고 읊조리거나 낯선 동양인 서버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벨기에 축구스타 케빈 더 브라위너보다 많다는 걸 확인하고 화들짝 놀랄 일도 없다. 한국의 TV쇼라는 데 큰 호감과 관심을 피차 숨기지 않는다.

<서진이네>의 뿌리인 <윤식당> 시리즈의 흥행 동력은 현실과는 완벽히 동떨어진 어느 동화 같은 배경을 만들었다는 데 있었다. 마음 설레는 이국적인 휴양지에서 톱스타들이 화려한 무대와 본업을 잠시 내려놓고 앞치마를 두른다. 그 세계에선 BTS의 뷔도 또래 친구들이 그러하듯 시급과 서열에 민감하고 야식으로 라면을 부시는 알바(인턴)일 뿐이다. 늘 누군가의 서포트를 받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타인에게 작은 행복을 줄 수 있는 역할에 진심을 다한다.

스스럼없이 다가가 인사와 미소를 짓고, 손님들도 손님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평화로운 풍경을 함께 만든다. 반복되는 근로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고, 좋은 사람들이 함께할 때 만들어지는 기분 좋은 분위기가 휴양지의 따사로운 햇살과 마음 편해지는 느긋한 공기에 스며든다. 여기에 영어를 통한 원활한 의사소통과 한식에 빠져드는 현지인들을 보여주는 국뽕 소스를 끼얹으면서 여행 예능의 역사와 나영석 사단의 성공 신화에 정점을 찍었다.

<윤식당>시리즈는 여행 예능은 물론 오늘날 여행 유튜버들의 신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현지인들과 문화적, 인간적 교류로 리얼한 재미를 찾는 방식의 콘텐트를 대중화했다. 그런데 2023년에 와서는 이것만으론 더 이상 어렵게 됐다. 한국의 문화적 위상과 국가 인지도의 급상승은 윤여정의 부재만큼이나 이 시리즈에 닥친 커다란 변화다. 김치, 비빔밥, 삼겹살을 넘어서 한국식 핫도그나 여러 술안주, 실제 <서진이네>에 PPL로 참여한 삼양의 불닭볶음면 등이 뉴욕과 런던 등등 세계적으로 터졌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내외신 매체나 여행을 통해 실제로 한국인이어서 갖는 프리미엄을 경험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서진이네> 손님들의 반응 또한 기존과 사뭇 다르다. 한국의 TV쇼 촬영이라는 걸 알고 찾아오고, 소주를 찾는 등 한식 경험이나 이해도가 전반적으로 높다. 그렇다보니 ‘국뽕 콘텐츠’를 선언하지 않는 이상 더 이상 모든 걸 리셋한 환경에서 우리네 톱스타들이 어떻게 비춰질지, 우리네 음식을 탐닉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을 반복하긴 어려워졌다. 실제로 1,2회는 시리즈의 다른 전작들과 달리 준비과정은 과감히 빨리 감기로 넘기고 바로 장사를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매출 우선주의 철학과 수직적인 조직관을 가진 오너의 등장은 꽤나 매력적인 변화다. 모든 것이 별다를 게 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지만 나영석의 페르소나 이서진은 이번에도 색다른 물꼬를 만든다. 2013년 <꽃보다 할배>부터 지난해 <뜻밖의 여정>까지 10년 넘게 함께 했고, 박서준, 최우식, 뷔 등이 가세하고 있으나 여전히 중심이 되는 자극은 이서진이 만들어낸다. 그는 인생철학과 세련된 화법으로 힐링하는 윤여정과는 다른, 현실감각과 직설적인 리더십으로 각기 다른 세대, 경험, 가치관의 단층을 드러나게 만든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입장 차가 갈등이 아닌 새로운 활기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서진이네>는 훵키한 배경음악처럼 사적인 친분과 수차례 맞춰본 합에서 나오는 경쾌함이 있다. 이서진은 늘 그래왔듯이 누구 눈치를 보지는 않는다. 세대론이든 꼰대든 아랑곳 하지 않고 매출과 기분이 연동되어 사업과 직원들을 자신의 관점으로 이끌지만 밉지 않다. 오히려 이서진과 나머지 직원들의 구도, 이사와 부장으로 승진한 두 중역의 성장, 친분으로 맺어진 주방 식구들 등등 출연진 사이의 관계는 다시 펼친 동화 같은 이야기에 변주와 풍성함을 가져다준다.

이처럼 <서진이네>의 바뀐 오너십은 물리지 않고 진심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으로 활용된다. 그로부터 비롯되는 몰입이 식당 조직 전체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처음 참여한 뷔가 말했듯 솔직히 좀 편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정작 손님이 오길 바라게 되고, 거기서 보람을 찾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이서진이 끌어올린 직위에 따라 정유미, 박서준도 두 인턴들과는 입장과 느끼는 책임감이 달라졌다. 2회에서 비춰진 정유미의 고군분투가 더욱 와 닿는 이유다. 진심을 다하지 않는 예능이 어디있겠냐만은, 진심, 애쓰는 마음을 잘 담아내는 예능은 드물다.

처음 본 손님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자연스러운 장면들이 유독 눈길을 끄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런 변화의 한 가지 풍경이다. 음식의 맛과 한류의 영향 확인보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이웃과 목례도 생략되는 삭막한 우리네 도시 생활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서진이네>는 현지인들에게 한국의 스타와 맛을 보여줬을 때의 리얼한 반응을 포착하는 볼거리보다, 좋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밝고 긍정적이고, 영어 표현으로 ‘칠링’한 분위기를 손님들을 통해 더욱 증폭시킨다.

그렇게 <서진이네>에는 이 시리즈의 핵인 윤여정은 없지만 멋진 휴양지의 분위기 속에서 좋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행복한 풍경이 다시 한 번 펼쳐진다. 영어공부에 불을 댕기게 만드는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문화, 되는 방향으로 일을 하려는 긍정적인 사고, 반복되는 조리과정에서 오는 반복되는 작은 성취, 스타의 지위를 내려놓고 손님과 직원, 손님과 손님 사이의 열려 있는 관계가 주는 기억이 살아나고 기대는 더욱 높아진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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