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시대극이면서도 회귀물 같은 매력을 가지려면

[엔터미디어=정덕현] 자신의 가족보다 은혜를 입은 집안의 머슴을 자처하는 아버지. 그 아버지는 심지어 그 집안 아들이 살인을 저지르자 제 아들이 대신 감옥살이를 하게 한다. KBS 월화드라마 <오아시스>에서 이두학(장동윤)은 그렇게 감옥에 갔다 오고, 그 아버지 이중호(김명수)는 그 죄책감에 아들을 찾아가 주머니를 탈탈 털어 영치금을 넣어주고 벌주듯 집까지 며칠을 걸어온다.
사실 <오아시스>의 이런 설정은 이 드라마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1980년대 같은 느낌이 별로 없다. 그보다는 구한말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물론 해방 이후에도 자신이 모시던 집안의 머슴을 자처하며 살았던 이들이 없진 않을 게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1980년대라는 시대성에 어울리는지는 미지수다. 이처럼 <오아시스>를 보다보면 1980년대 풍경이라기보다는 1970년대 혹은 훨씬 그 이전의 풍경 같은 느낌을 주는 상황들이 등장하곤 한다.

이런 지점들은 그 시대를 떠올리는 재미가 클 수밖에 없는 시대극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이유가 된다. 시대극은 최근 대중들이 열광하는 판타지 장르인 ‘회귀물’ 같은 특성이 있다. 그 시대를 이미 겪었기 때문에 이를 배경으로 가져오는 것만으로 앞으로 작품 속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는 걸 알면서 보는 재미다. 그 벌어질 일들 속에서 주인공들이 어떤 부침을 겪을 것이며 끝내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줄 때 시대극은 마치 회귀물 같은 짜릿한 매력을 선사한다.
따라서 시대극이 당대의 시대성을 담고, 그 리얼리티를 등장하는 소품 하나하나까지 신경 써 그려내는 일은 중요하다. 그것이 그 시대를 겪은 이들에게 당대를 소환해주는 마법의 장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오아시스>의 이두학과 이중호의 서사는 아쉬운 지점이 있다.
반면 이두학이 출소한 후, 그를 대신 감옥에 가게 만든 장본인 최철웅(추영우)이 안기부로 간 황충성(전노민)의 지시로 오만옥(진이한)에 의해 갖은 고문을 당하다 대학가 운동권의 프락치가 되는 이야기는 1980년대의 시대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당시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컸던 시대가 아닌가. 학내에 전경들이 진을 치고 있을 정도로 삼엄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프락치라는 게 밝혀져 운동권 선배들에 의해 양심선언을 종용받지만 끝내 사실을 털어놓지 않은 최철웅이 이두학 덕분에 가까스로 빠져나와 돌아오다 끝내 오열하는 장면은 그래서 80년대의 시대가 갖는 아픔을 느끼게 해준다. 최철웅은 고문과 협박 때문에 프락치가 되긴 했지만, 그 속에서도 끝내 선배들을 팔아넘기지는 않았다며 오열한다.
물론 최철웅 때문에 감옥까지 대신 가게 됐지만 이를 원망하면서도 끝내 그를 동생처럼 대하는 이두학의 모습은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면이 있지만, 80년대라는 지금과는 달랐던 시대의 브로맨스로 수긍된다. 다만 출소한 이두학이 어떤 욕망을 갖고 있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형처럼 최철웅을 챙기고, 여전히 오정신(설인아)에 대한 순애보를 멀찍이서 계속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이 인물의 매력이 생기기 쉽진 않을 것 같다.

<오아시스>에서 회귀물 같은 시대성의 매력이 드러나는 또 한 대목은 오정신이 남해극장을 홀로 운영하며 버텨내는 과정을 통해 그려지는 극장에 대한 이야기다. 그가 광주 전남지역의 영화 독점 배급업자이자 향후 스승이 되는 차금옥(강지은)을 만나 영화업계에서 성장해가는 과정은 이 시대극이 가진 또 한 축의 재미요소다. 1980년에 개봉해 공전의 히트를 친 <부시맨> 같은 영화나, 혜성 같이 등장해 한국영화사의 한 획은 그은 <꼬방동네 사람들(1982)>의 배창호 감독 이야기는 그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당대의 영화계 이야기들을 배경으로 오정신이 어떤 입지전적인 성공을 거둘지 기대되는 이유다.
이처럼 <오아시스>는 시대극이면서도 회귀물 같은 매력을 가진 드라마임에 분명하다. 다만 앞서도 말했듯 이두학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설정들은 80년대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라 시대성에 몰입시키는 리얼리티를 깨는 면도 없잖아 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에 기대감이 생기는 것 역시 최철웅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80년대 민주화 과정의 이야기와 오정신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당대의 영화가 이야기가 시대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두학은 어떤 시대성을 담는 인물로 그려질까. 어딘가 주먹 쓰는 낭만적인 건달의 풍모가 묻어나는 지점에서 그 시대의 또 다른 풍경을 담아내지 않을까. 세 청춘을 축으로 하는 <오아시스>에서 주인공이라 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어떤 인물로 그려질지 알 수 없는 이두학의 행보는 그래서 이 드라마의 중요한 관건이 될 것 같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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