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라미란을 나쁜 엄마로 만들었을까(‘나쁜 엄마’)
‘나쁜 엄마’, 라미란이 에둘러 보여주는 나쁜 세상

[엔터미디어=정덕현] “내 인생이요? 내 인생이 어디 있는데요? 그거 엄마 인생이잖아요? 아휴 지겨워 진짜. 지긋지긋해. 아, 숨 막혀서 살 수가 없다고요! 왜 엄마 마음대로 내 인생을 정해 놓고 나를 괴롭혀요. 아빠가 억울해서 죽은 게 그게 내 탓이에요?” JTBC 수목드라마 <나쁜 엄마>에서 강호(이도현)는 꾹꾹 눌러왔던 속내를 엄마 영순(라미란)에게 꺼내놓는다.

아빠의 억울한 죽음. 그 절망 속에서도 끝내 살아냈던 엄마. 그 엄마가 자신을 판검사 만들려고 독하게 ‘공부’만을 시켜도 그걸 받아들였던 강호였다. 하지만 그렇게 입시만을 향해 달려왔던 강호가 시험 당일 사고를 당한 미주(안은진)를 챙기느라 시험을 치르지 않자 질책하는 엄마에게 강호는 끝내 참았던 말들을 쏟아 놓는다.

“네 맞아요. 엄마 나쁜 사람이에요. 왜 다른 사람 때문에 내 인생 망치냐고요? 엄마가 그렇게 살라고 하셨잖아요? 힘 있고 능력 있는 사람 돼서 힘없고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라고 하셨잖아요? 근데 아니었어. 엄마는 그냥, 힘없어서 당한 게 억울했고 나를 이용해서 보란 듯이 그 힘을 갖고 싶었던 거라고요. 나를! 아빠를 죽게 만든 그놈들과 다를 거 없는 그런 속물로 키우고 싶었던 거라고요.”

영순은 스스로를 ‘나쁜 엄마’라고 한다. 심지어 ‘돼지 똥냄새’라고 한다. 그러면서 강호에게 그걸 벗어나려면 판검사가 되라고 한다. 하지만 설마 강호의 말처럼, 영순이 아들을 이용해 힘을 갖고 싶었을까. 남편의 죽음이 못내 억울했고 그것이 힘이 없어서 당했다는 사실에 원통했지만 그렇다고 아들을 이용하려 했을까. 자식이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 더 크지 않았을까. 강호는 오해한다. 엄마의 진심을.

그런데 그렇게 비뚤어진 마음으로 검사가 된 강호는 진짜 속물이 된다. 자신의 아버지가 억울하다며 찾아갔지만 송우벽(최무성) 같은 악당과 손을 잡았던 오태수(정웅인) 검사와 똑같은 짓을 한다. 절박한 약자를 돕기는커녕, 그가 결정적인 증거를 가져오자 오히려 그 사실을 상대편에게 흘린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처럼 강호가 속물검사가 되어 돕는 이가 바로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승승장구해 우벽그룹 회장이 된 송우벽이다. 엇나간 강호는 이 진실을 마주하고 자신의 삶 또한 변화시킬 수 있을까.

<나쁜 엄마>가 영순과 강호라는 모자를 통해 담아내는 이야기는 마치 개발시대에 그토록 뜨거웠던 부모들의 교육열을 떠올리게 한다. 어찌 보면 가난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처럼 보였던 판검사가 되는 길.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판검사가 된 후 그들은 과연 행복해졌을까. 아니 그들은 행복해졌을지 모르지만 함께 더불어 사는 사람들도 행복해졌을까. 속물이 되어 저들 배만 채우는 삶을 선택함으로서 다른 이들을 불행하게 만든 건 아니었을까.

<나쁜 엄마>가 영순과 강호의 관계를 통해 통찰하고 있는 건 그토록 성공을 향해 달려온 한 시대가 결국 마주하게 된 불행의 순간들이다. 강호는 재벌과 결탁한 속물 검사가 됐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불행해진다. 아마도 이 진실을 마주하게 된 영순은, 강호가 검사가 된 것으로 제 할 일은 끝났다고 생각한 게 착각이었다는 걸 알게 되지 않을까. 자식 잘 되기만을 바라며 그래서 ‘나쁜 엄마’를 자처했던 영순은 이제 ‘나쁜 아들’이 된 강호를 제자리로 돌려놓으려 하지 않을까.

조우리 돌담 마을 사람들은 새로 들어와 돼지농장을 하는 영순에게 몰려와 냄새나는 축사일을 못하게 하려 강짜를 부리려하지만, 아이를 가진 엄마라는 사실을 알고는 마음이 약해진다. 결국 강짜 부리려 왔던 마을 사람들은 마침 진통이 온 영순의 아이를 받아내고 그렇게 영순네는 돌담 마을 사람이 된다. 겉보기엔 자신들의 욕망만 있는 것처럼 나빠 보이지만 그 속은 한없이 착하고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이 따뜻한 돌담 마을 사람들이라는 공동체는 그래서 저 우벽그룹 송우석을 위시한 차기 대권을 노리는 오태수 같은 진짜 ‘나쁜 자들’과 대결구도를 만든다. 그 나쁜 자들에 포획된 강호를 구해내기 위해 영순과 돌담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싸워나갈까. 훈훈하고 정겨운데다 해학적이기까지 한 시골 정경 속에 드리워진 나쁜 세상과의 팽팽한 대결구도가 흥미진진하다. 세상에 나쁜 엄마가 어디 있으랴. 나쁜 세상이 있을 뿐.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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