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꼴리아’가 사랑과 사건을 풀어가는 방정식

[엔터미디어=정덕현] “수학적 증명에는 참과 참이 아닌 것, 두 가지만이 존재합니다. 참을 참이 아니라 할 수 없고 참이 아닌 것을 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수학자는 거짓말을 못하거든요.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선 참이 참이 아닌 게 되기도 하고 참이 아닌 것이 참이 되기도 합니다. 4년 전 아성영재학교의 전신인 아성고에서 바로 이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성고의 한 수학교사와 남학생이 부적절한 관계라는 소문. 이 스캔들은 빠르게 퍼지고 부풀려졌습니다. 트루(True)는 폴스(False)가 되었고 폴스는 트루가 되었죠. 당시 아성고 2학년이었던 그 부적절한 스캔들의 주인공이 바로 접니다.”

아성영재학교에서 추진하는 국립수학박물관 건립을 위한 MOU 자리에 연사로 오른 백승유(이도현)는 의외의 폭탄 발언을 던진다. 그는 칠판에 트루와 폴스를 의미하는 T, F를 적어 놓고 마치 수학문제를 풀 듯 4년 전 사건을 꺼내놓는다. 그 당사자가 바로 자신이라며. 이 도발에는 이제 백승유가 4년 전 스캔들로 치부되었던 그 사건이 사실 거짓이었다는 전제가 들어있다. 따라서 백승유는 이 도발을 통해 그것을 이제 증명해 보이겠다는 일종의 선언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tvN 수목드라마 <멜랑꼴리아>는 그래서 이제 4년 전 스캔들을 증명을 통해 뒤집고, 당시 그 스캔들을 만들었던 노정아(진경)와 그와 연루된 이들의 추악한 범죄 행위들을 낱낱이 드러내는 과정을 담으려 한다. 물론 노정아의 만만찮은 반격이 이어질 테지만, 어느 정도 그 결론은 나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애초 백승유나 지윤수(임수정) 선생님 같은 캐릭터를 이 드라마가 내세운 건, 순수한 수학의 세계와 달리 참이 거짓이 되기도 하고 거짓이 참이 되기도 하는 속물적인 현실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 때문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멜랑꼴리아>가 흥미로운 지점은 이 일종의 복수극이 단순히 돌아온 백승유와 지윤수가 거짓을 뒤집고 이기는 과정만을 목적으로 담고 있지는 않아서다. 그런 ‘결과’보다 <멜랑꼴리아>는 ‘과정’ 또한 중요하다 생각한다. 즉 수학문제를 푸는 일이 그저 정답을 찾아내는 그 결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걸 풀어가는 과정 자체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고 드라마는 이미 말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4년 후 돌아온 백승유와 지윤수 선생님이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건 이 어찌 보면 당연히 이뤄질 복수극에 어떤 불안감을 드리우게 만드는 이유다. 그들은 변한 것처럼 보인다. 백승유가 지윤수 선생님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자신에게 호감이 있는 척 거짓을 보인 사실에 성예린(우다비)은 이렇게 말한다. “난 예전부터 승유가 좀 망가졌음 했어. 상처나고 흠집 나서 나랑 비슷해지길 바랐어. 그래서 승유 옆의 내가 초라하지 않고 볼품없지 않게.”

재단을 두고 노정아와 대결을 벌이고 있는 노연우(오혜원) 역시 자신을 찾아온 지윤수에게 비슷한 말을 한다. “너도 변할 수 있구나. 우리 고등학교 다닐 때 난 변심했지만 넌 끝까지 굽히지 않았잖아. 어떤 일에도 흔들리거나 부러지지 않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거 생각보다 많이 불편하더라. 꼭 가시가 박힌 것처럼. 아마 성재씨도 네 옆에 있을 때 그랬을 거야.” 성예린도 노연우도 모두 백승유와 지윤수가 과거 4년 전처럼 순수하게 변하지 않는 인물로 남아 있는 걸 원하지 않는다. 이 진흙탕 싸움을 통해 자신들과 같은 속물이 되길 원한다.

괴물과 싸우면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일이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는 것이라 했던가. 백승유와 지윤수는 참을 거짓으로 만들고 거짓을 참으로 만드는 세상과 맞서기 위해 싸우면서 순수하게 수학을 사랑하던 그 모습을 지켜낼 수 있을까. 진실을 밝혀져야 하겠지만, 그것이 저들이 하던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면 그건 과연 ‘행복한 증명’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스캔들이라 저들이 뒤집어씌운 속물적 프레임 자체가 잘못된 전제는 아닐까. 스캔들이 아니라 순수한 사랑이었다는 걸 과연 백승유와 지윤수는 어떤 방식으로 증명해낼까. 다소 익숙한 복수극의 양상을 보이는 <멜랑꼴리아>의 앞으로의 전개가 여전히 궁금한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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