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애써 외면하는 방송사들, 언젠가 조롱의 대상이 될 수도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여러 전문가들이 지구위험 한계를 2050년이라고 말한다. 지구멸망이 설마 내 눈앞에서 벌어지지는 않겠지 했는데 요즘 계속되는 기상이변을 보면 머지않아 그 꼴을 보겠다는 생각이 든다. 2050년이 한계라면 내 손녀가 3~40대 아닌가. 이렇게 되면 아이를 안 낳는 게 맞다.

지난 13일, 목요일 밤 KBS 예능 <홍김동전> 방송 중에 ‘중대본 호우 위기 경보 최고 수준 ’심각‘ 단계 발령’이라는 뉴스 속보가 떴다. 예능 프로그램에 이와 같은 큼지막한 공지를 내보낼 정도면 엄중한 경고가 아니겠나. 지난해에는 서울도 심각한 물난리를 겪었지만 집중 호우 때마다 산사태로, 제방 붕괴로, 하천 범람으로 희생되는 분들의 태반이 연세 높은 어르신들이다. 재난 문자가 쏟아지긴 하나 휴대폰을 자주 보지 않는 어르신들도 많다. 반면에 친구 같은 TV는 늘 틀어놓고 지내시니까 이 분들에게는 문자보다는 TV를 통한 안내가 훨씬 전달력이 있지 않을까?

안내 방송까지는 바라지 않겠다. 애통 절통한 사고 소식이 그저 남의 집 불구경에 불과한 방송사가 왜 이리 많은지. 지난 15일 저녁에 이번 폭우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온 충북 오송 지하차도 사고 뉴스를 보다가 채널을 돌려보니 TV조선에서는 <미스터 로또> 재방송을 하고 있었다. 마침 방청객들이 열광하는 장면이 나왔다. 한쪽에서는 흙탕물이 넘실대는 참혹한 피해 현장을 보여주는 마당에 한쪽에서는 미친 듯이 춤추며 노래하는 광경이라니. 이건 무섭기까지 했다. TV조선이 공영방송 KBS도 아니고 재난방송을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그런 날 굳이 <미스터 로또> 재방송을 틀어야 했나.

내가 <홍김동전>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눈치가 있다는 거다. 도리와 상식을 안다. 지난해에 홍수로 물난리가 났을 때 마침 그 즈음 방송될 아이템이 물놀이였다고 한다. 극심한 홍수 피해로 고통을 겪는 분들이 많은데 물놀이하는 장면을 방송할 수 없다고 판단해 무려 5주를 미뤘다지? 또 이태원 참사 때는 할로윈 특집을 방송한 다음 주에 사고가 났다. 즉시 할로윈 특집 다시보기를 중단했고 OTT에조차 공개하지 않은 <홍김동전>. 그 유명한 이수지 씨 나온 분량만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크게 화제가 됐지만 포기하는 용단을 내린 거다.

몇 년 동안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코로나19도 단순한 보건 위기가 아닌 기후와 생태계 등 여러 원인이 중첩된 결과라고 한다. 지구온난화로 빙산이 녹기 시작하면서 그 안에서 수천, 수만 년간 잠복해 있던 고대 바이러스들이 바다로 방출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번 집중호우, 단순히 해마다 찾아오는 장마가 아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물폭탄이다. 몇 년 전부터 점점 지구 온도가 상승하면서 더 많은 수중기가 만들어지고 결국 물폭탄이 되어 우리를 강타하는 거다. 대비하지 않으면 속수무책 크나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건만 왜 우리나라 방송사들은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없는 걸까?

그런 이유로 우리나라가 천년만의 폭우라는 물 폭탄을 맞은 지난 14일, 금요일 밤 MBC 예능 <나 혼자 산다>를 보다가 ‘눈치 좀 챙기지’,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박나래가 자기 집 정원에서 ‘미래 소년 코난’ 놀이를 했는데 ‘포비’처럼 숯불에 구운 삼겹살과 생선을 뜯어 먹는 장면을 연출했다. 기후위기로 인해 참담한 피해를 입은 이 시점에 적절한 장면일까? 기후위기의 주범은 과잉 생산, 과잉 소비, 과잉 폐기가 아닌가. 다음 날, 15일, 오송 지하차도 사고가 난 날이다.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도 늘 그렇듯이 이영자 먹방이 펼쳐졌다. 어느 결에 먹방이 주가 된 <나 혼자 산다>와 <전지적 참견 시점>, 잠시 잠깐이라도 자제하면 안 되나? 지난달 24일에는 이국주 집에서 '9라걸즈‘ 모임이 열렸다. 먹고 또 먹고 부어라 마셔라, 설정이려니 하지만 해도 너무한다. 훗날 지구가 멸망을 눈앞에 뒀을 때 무엇이 지구를 이렇게 망쳤는가, 이런 장면들이 자료로 나오지 싶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먹고 싸고 해서 지구가 이 꼴이 났다고.

그래도 <나 혼자 산다>와 <전지적 참견 시점>은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는 편이다. 반면 SBS <미운 우리 새끼>와 <돌싱포맨>은 집에서 찍더라도 허구한 날 테이크아웃 커피에 배달음식이지 않나. 한동안은 이상민 씨가 요리를 좀 하더니 이제는 성가신지 요리를 끊었더라.

기후위기에 대처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일회용품 줄이기와 육식 줄이기다. 영향력 있는 방송에서 모범을 보여주면 좋을 텐데 허나 아쉽게도 모범을 보여주는 방송은 거의 없다. KBS <오늘부터 무해하게>도 10부로 마무리 되지 않았나.

​세계 곳곳을 강타한 기록적인 폭우와, 50도가 넘는 유럽의 폭염, 통제 불가능인 캐나다 산불은 아직도 계속 타오르고 있다.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무서운 건 해마다 기록이 경신된다는 거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권과 방송사들은 도무지 경각심이 없어 보인다. 자기들 일이 아니려니 하겠지. 올해에 내가 무사했다고 해서 내년에도 무사하다는 보장이 없다는 걸 모르는 거다. 재해가 언제 나에게, 당신에게 밀어닥칠지 알 수 없다는 사실 잊지 마시라.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MBC, TV조선,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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