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이효리 따라잡기로 모녀 여행 붐이 일기를 바라며(‘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이효리 표 새 예능, JTBC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또 여행이야? 또 연예인 가족이야?’ 지겹다는 소리가 나올 법 한데 가는 길이 다르다. 흔해빠진 먹기 위한 여행이 아니어서 좋고 무엇보다 억지 갈등 설정이 없어서 좋다. 이효리가 어머니를 모시러 댁으로 가는 게 아니라 서울역에서 만나서 기차 여행을 시작한다. 모녀 관계를 떠나 인간 ‘전기순’으로, 인간 ‘이효리’로 한번 같이 떠나보자, 이거다. 출발부터 산뜻하다.
인터뷰 때 이효리가 어머니와 어색한 관계라고, 단 둘이 여행을 갈 사이는 아니라고 털어놓았다. 어떤 마음인지 알겠다. 엄마 없으면 하루를 못 살던 아이도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엄마와 점점 거리가 생기기 마련이지 않나. 그러다가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면 엄마 손이 필요해진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갈등도 깊어진다. 육아라든지 살림이라든지 여러 면에서 부딪히기 때문이다. 대판 싸워서 한동안 안 보고 살았다는 모녀도 있다. 나아가 매개체 역할을 했던 아이가 다 크고 나면 점점 더 만날 일도 없어지고 공통 화제도 사라진다.

결혼을 했거나 안 했거나 40대 후반부터는 다정한 모녀로 살갑게 지내기 쉽지 않다. 할 도리만 하면서 감정적으로는 소원해지는 단계.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으나 대체로 그렇다. 어머니 전기순 님이 79세, 이효리가 45세. 현실적으로 데면데면 지낼 나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사는 동안 켜켜 쌓였을 앙금, 중간 중간 접혀진 페이지들을 씻어내고 펼치고 할 계기가 되어준다.
이효리 이름값이면 세계 어디든 갈 수 있을 게다. 여행 업체들, 각 나라 관광청들이 쌍수를 들어 환영하지 않겠나. 협찬은 또 오죽이나 잘 붙겠는가. 그러나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가 택한 건 경주와 거제도, 국내 여행이다. 기차 타고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효리 따라잡기’가 가능한 수준이다. 요즘 부모님과 여행을 간다고 하면 효도 차원에서 잘 견디고 오라는 격려와 위로가 줄을 잇는다. 오죽하면 부모님 여행 십계명이 있겠는가. 자식과 여행을 갔을 때 주의할 점, 해서는 안 되는 말들. 그 중 ‘물이 제일 맛있다’, 이건 부모 자식 관계를 떠나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 될 말이다. 전기순, 이효리 모녀도 화내지 말자고 다짐한다. 별 탈 없이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

방송을 보고 있자니 우리 엄마 생각도 나고 딸 생각도 났다. 돌이켜 보니 나 역시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몇 년 전 치매 판정을 받으셔서 어디 모시고 다닐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 나도 내 일이 있고, 또 집안에 나름 우환이 계속 이어졌었고. 아니 아예 ‘엄마와 단둘이 떠나볼까?’ 이런 궁리 자체를 안 해봤다. 솔직히 말하면 내키지 않아서일 게다. 아마 우리 엄마도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취향도 생활 습관도 달라서 둘이 여행을 떠났다면 엄청나게 부딪혔을 테니까. 그러나 엄마가 어디 다닐 수 있으셨을 때, 건강이 괜찮았을 때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엄마 우리도 저 모녀처럼 한번 가볼래?’, 제안을 해봤지 싶다.
이 프로그램은 JTBC <효리네 민박>, <캠핑 클럽>을 함께 해온 마건영 PD, 윤신혜 작가, 이경희 작가가 만든다. 예능을 볼 때 꼭 제작진을 확인하시라는 말씀을 자주 드리는데 출연자가 재료라면 제작진은 요리사이기 때문이다. 같은 식재료라 할지라도 조리하는 사람에 따라서 불량식품이 될 수도 최고의 요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쭉 지켜본 바 이 팀은 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린다. 뭔가 첨가하지 않고 장식하지 않고 재료의 장점을 잘 찾아낸다. 특히 이효리에 관한한 ‘이효리 사용 설명서’ 보유자라고 할까? <효리네 민박>을 보면서 ‘이효리 씨 다시 봤네’ 했는데 <캠핑클럽>을 통해서는 또 다른 면을 봤고 그리고 이번에 또 새롭다.
아무쪼록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모녀 여행 붐이 일기를 바란다. 여행까지는 아닐지라도 엄마에 대해 딸에 대해 한번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JTB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