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야? 공포야? ‘구미호뎐’, 구슬이 서 말이라도 잘 꿰어야
‘구미호뎐’, 구미호의 현대적 재해석 의도는 좋지만 남는 아쉬움

[엔터미디어=정덕현] tvN 수목드라마 <구미호뎐>은 남자 구미호 이연(이동욱)이라는 인물을 통해 구미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백두대간의 산신으로 살다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고 그 여인의 환생을 조건으로 수백 년간을 속세로 내려와 내세를 어지럽히는 요괴들을 때려잡는 일을 하고 있는 이연은 자신 앞에 나타난 남지아(조보아)가 자신이 기다리던 바로 그 여인이라고 느낀다. 자신이 그 여인에게 남겨놓은 여우구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지만, 남지아를 구해내고 쓰러진 이연 앞에 그 흔적이 나타난다. 드디어 이연은 찾았다고 말한다.

이처럼 <구미호뎐>은 수백 년의 인연으로 연결된 이연과 남지아의 운명적인 사랑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그건 가슴 절절한 멜로를 기대하게 하는 이야기지만, 어딘지 남지아가 이연이 찾던 그 여인이라는 걸 발견하는 그 순간의 장면이 주는 감흥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것보다는 아이 귀신들에 쫓기다 옥상에서 떨어지게 되는 그 위급한 상황과 동시에 그를 구하기 위해 도산지옥을 피투성이가 되어 건너는 이연의 상황이 만들어내는 긴박감이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물론 어떻게든 남지아를 구하기 위해 기어서라도 피투성이 몸을 이끌고 도산지옥을 건너려는 이연의 절절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남지아가 아이 귀신들에게 계속 쫓기고 도망치는 그 장면들은 그의 위기 정도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공포물의 한 대목을 보는 것 같다. 물론 이런 위험에 처한 남지아를 이연이 구하고 그들이 그 운명적인 고리를 알게 된다는 스토리를 그려내려는 건 알겠지만, 감성적으로 공포에서 멜로로 변하는 이 과정들이 매끄럽게 봉합된 것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공포와 멜로의 퓨전. 달콤함과 살벌함의 조합. 최근 들어 장르의 퓨전을 통한 색다른 이야기의 창출은 드라마에서도 자주 활용되는 방식 중 하나다. 같은 시간대의 tvN 전작 드라마였던 <악의 꽃>의 경우도 그렇다. 달달한 멜로와 살벌한 스릴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악의 꽃>은 실로 장르 퓨전이 갖는 오묘한 맛을 성공적으로 구현해낸 작품이었다.

하지만 <구미호뎐>의 공포와 멜로의 조합은 다소 덜컹거린다. 사고로 부모가 사라지고 대신 부모인 양 하는 요괴들과 어린 남지아가 싸우는 장면이나, 성장해 PD가 된 남지아가 이연과 함께 섬에 들어가 그 곳에서 벌어지는 해괴한 사건들을 파헤치는 이야기는 마치 <the guest> 같은 엑소시즘의 공포물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구미호가 현세에 남아 내세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일을 하는 그 대목이나 이연과 남지아의 오랜 세월을 넘는 운명적인 사랑의 이야기는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호텔 델루나>의 판타지를 떠올리게 한다.

처음 남지아가 이연을 시험하기 위해 고층건물에서 몸을 날리고, 이연이 몸을 날려 그를 구해내는 장면이나, 이연과 이랑이 싸움을 벌이는 장면 등은 <트와일라잇>이나 <X>이 연상되고 여기에 이연이 도산지옥을 넘어가는 장면은 영화 <신과 함께>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너무 많은 장르적 이미지들이 뒤섞여 있고 무엇보다 그 다른 장르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감정들의 조합이 덜컹거린다. 그래서 시청자들로서는 어디에 몰입을 해야 할지 애매해진다. 공포물의 한 장면에서 느껴지는 소름 이후에 갑자기 멜로로 전환되는 상황이 몰입을 오히려 깨고 있기 때문이다.

<구미호뎐>은 구미호를 남자로 내세워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겠다는 기획의도가 참신한 작품이다. 게다가 다양한 토종 설화 속 요괴들을 현재로 끌어오겠다는 시도 또한 야심차게 느껴진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좋은 재료들이 아니라 이것을 한 줄로 잘 꿰는 일이 아닐까 싶다. 장르적 퓨전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쪽에 무게중심을 둘 것인가는 정해줘야 시청자들의 몰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으스스한 미스터리에 중심을 둘 것인지 아니면 운명적인 사랑에 중심을 둘 것인지 좋은 재료들을 너무 많이 손에 쥐고 있어 결정을 못하고 있는 듯한 구성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잘 꿰어야 보배가 되는 법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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