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돌아보는 TV 속 아이들이 소비되는 방식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엄마는 입 좀 다물어라! 이모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세요.” KBS 주말드라마 <오케이 광자매>에서 오탱자(김혜선)의 딸 오뚜기(홍제이)7살짜리 아이지만 어른들에게 그런 입바른 소리를 한다. 50대 철없는 엄마를 훈계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아마도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을 훈계하는 아이라는 역전된 상황으로 웃음을 주려는 의도였을 게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아이를 소비하는 건 과연 괜찮은 일일까.

어른들의 시선으로 소비되는 아이들은, 그 시선의 틀에 묶여 아이로서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그 지점을 벗어난다. 아이다운 아이의 모습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의 관점에서 보고픈모습으로 편향되어 소비되는 것이 문제다. 나아가 어려도 어른 같은 모습을 보이는 아이를 기특하게바라보는 시선은 정반대로 아이여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아이다움의 권리를 빼앗는 일이 되기도 한다.

어린이날을 맞아 최근 TV 속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가 하는 걸 들여다보면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어른들을 위한아이의 모습들이 채워져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TV조선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들인 <미스터트롯>, <미스트롯2>에 출연했던 아이들 소비는 자못 폭력적이었다. 초등부 아이들을 모아 놓고 잔인한 경쟁을 시키고, 결국 눈물을 터트리는 아이를 방송을 위해 집요하게 소비하기도 했다. 때론 너무 늦은 시간까지 장시간 촬영한 것이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MBC <아빠 어디가> 이후 쏟아져 나온 이른바 육아예능으로 아이들은 관찰카메라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지금도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아이들을 방송으로 소비하고 있다. 아이들이 방송에 등장하는 건 여러모로 논란의 소지가 있다. 아직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없는 아이들의 경우, 부모의 판단에 의해 방송에 노출되지만 그것이 아이가 원하는 일인가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 그런 노출은 훗날 아이에게 엉뚱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게다가 이렇게 방송이 소비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철저히 어른들이 보고픈 모습들만 전시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비춰진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기 싫어 하지만그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는 아이 본연의 모습을 가리게 된다. 어른들이 원하는 모습들만 전시되어 방송이 비추게 되는 반쪽 자리 아이의 모습은 대중들에게 부지불식간에 아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나 편견, 선입견을 심어 놓을 수 있다.

국제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이 지난 4일 내놓은 이른바 린이라는 신조어가 차별의 언어라고 밝힌 대목은 지금의 방송 프로그램들이 얼마나 어른 위주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어린이를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취급하는가를 잘 말해준다, MBC <백파더>에서 처음 등장한 요린이라는 표현은 요리 초보의 의미로 쓰였지만, 그 초보나 미숙함을 어린이에서 끌어온 건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이후 별다른 비판의식 없이 이 용어는 계속 사용됐고, ‘주린이(주식초보)’, ‘골린이(골프초보)’, ‘산린이(등산초보)’ 같은 신조어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어린이는  방정환 선생이 아해놈’, ‘애녀석같이 아동을 낮춰 부르는 말이 성행하던 당시 어른과 같은 독립적인 존재로 존엄성을 존중하기 위해 처음 사용한 말이었다고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현재 우리가 방송 등을 통해 소비하는 어린이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드라마들 속 어른들의 시선으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왜곡된 아이들의 모습이나 예능 프로그램 관찰카메라 속에서 귀여운 모습으로만 소비되는 아이들은, 그 자체로 어른들의 인식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그것은 아이가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이며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할 권리를 빼앗는다. 어린이날을 맞아 한번쯤 방송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를 비판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TV조선]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