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 역력한 ‘나혼산’ 대대적인 재정비 절실하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최근 기안84와 관련된 <나 혼자 산다> 왕따 논란은 사회적 문제로 비화될 만한 내용이 결코 아니었다. 우리 사회는 현재 대립이 삶의 원동력이 될 만큼 갈등이 팽배해 있고, 대중, 여론이란 이름의 인터넷 세상은 바싹 마른 장작처럼 언제든 바로 불붙을 준비가 되어 있다. 뭐가 됐든, 어쨌든 활활 불태우게 누가 불씨만 당겨주길 호시탐탐 기다리는 시기에 부주의했던 <나혼산> 제작진이 불씨를 땅에 떨어뜨린 셈이다.

퍼져나간 스크랩이나 몇몇 게시글을 찾아봤다. 사실관계가 틀린 부분도 있고, 과거 사례에서 짜깁기를 통해 기안84가 박해받았음을 정당화하려고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렇게 해야 할 이유 자체가 출연진, 제작진, 시청자 모두의 입장에서 없기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거센 불길이 단숨에 일었지만 불과 한 달도 안 돼 한 개비 성냥의 불꽃처럼 분노가 재가 되어 사라진 것은 발화점이 그만큼 허황됐기 때문이다.

우선 오래도록 기안84를 따돌렸다고 지목되는 황지영 PD는 이미 지난 2월에 팀을 떠났다. 기안84를 발탁하고 전성기를 함께한 그가 기안84를 배척하거나 무심했다는 주장 또한 날조와 왜곡이다. 실제로 기안84는 그동안 작품 활동에서 비롯된 여러 논란을 <나혼산>을 통해 대처했다. 사람은 좋은데 잘 모르고 엉뚱한 캐릭터라며 ‘실수’로 중화했다. 기안의 기이하며 순수한 캐릭터 또한 작품 활동이 아니라 <나혼산>을 통해 브랜드가 됐다. 그 결과 웹툰의 성과에 비해 엄청난 인지도를 갖게 됐고 방송과 작품 활동의 선순환을 이뤄냈다. 서로에게 무척 소중할 수밖에 없는 관계다. 사회성이 떨어지고 세속과 거리가 멀다는 기안84가 그 성가신 예능에 장기 출연하고 있는 이유를 다르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무엇보다 완만한 하강기에 접어든 대형 예능의 마지막 버팀목인 기안84를 이제 갓 새로 온 제작진이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건 상식적으로 성립되기 힘든 논리다. 기안84는 2017년부터 시작된 <나혼산> 전성기의 주역이자 방송에서는 유일하게 이 프로그램에서만 볼 수 있는 독점 콘텐츠다. 이른바 2017년 봄 제주도에서 시작한 <나혼산> 전성기의 몇 안 남은 성골인데다, 나오기만 하면 한방을 보여주는 이른바 ‘크랙’이다. 실제로 전현무와 한혜진의 이탈 이후 박나래와 함께 고난의 시간을 앞장서 헤쳐 왔다. 이시언, 헨리를 비롯해 그 시절 멤버들이 떠나거나 멀어지고, 박나래를 중심으로 여성 예능화 되고, 이후 박나래가 위축된 다음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에이스 역할을 맡아온 출연자다. 기대면 더 기댔지 비토할 이유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혼산>에 끊임없이 방화의 좌표가 설정된 것은 이 프로그램이 계속해서 무척이나 꾸준하게 불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재미만 사라진 게 아니라 공감대를 잃고 흔들리다가 이제 콘셉트마저 없어졌다. <나혼산>이 히트할 수 있었던 발판인 진정성은 일상이 아니라 관계에서 나왔다. (초기 <나혼산>의 모습이나 짠함을 코드로 삼은 김광규, 육중완 시절이 진짜다, 그립다는 의견도 존중하지만, 그러고 있다가 자칫 폐지될 뻔한 프로그램이었음을 기억하자.) 그런데, 지금 무지개 회원 사이의 관계성은 실종되었다. 융화되고 하나가 되어야 에너지와 새로운 이야기가 생긴다. 하지만 이번에 사단이 난 배경도 새로움보다는 ‘어게인 2017’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문제가 발생한 셈이다.

즉, 섭외가 절반인데 그 섭외의 방향성이나 한 수가 보이지 않고, 그렇게 등장한 인물들이 보여주는 일상은 관찰예능의 끝물 속에서 지나치게 정형화된 설계된 이벤트의 나열이다. 반응이 훌륭하진 않았지만 ‘여은파’는 그래도 무언 갈 보여주고자 하는 건 알 수 있었고, 멤버들의 구성이 비슷하게 정렬됐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스튜디오에서는 친하다고 하지만 기존 멤버들과 단골 출연하는 멤버들 사이의 관계 형성이 1년을 넘도록 지지부진하고, 홍보성 출연이나 올림픽 후광과 같은 예측가능한 화제성을 기반으로 하는 단발성 출연이 줄을 이었다.

지난주 출연한 펜싱 금메달리스트 오상욱과 개그맨 김민경 편도 마찬가지다. 운동하고 먹방하고, 시청자들이 알만한 지인이 등장해 시간을 보내고, 샤워신을 꼭 삽입해 노출하는 황지영 PD 시절 잡아놓은 아웃라인을 그대로 따른다. 워낙 정돈된 흐름 속에서 일상을 시간표처럼 나눠서 보여주길 반복하다보니 ‘새로운 사람’에 대한 기대도 떨어지고 ‘좋은 사람’이란 교감을 느끼긴 더욱 어렵다. 이른바 일상과 감정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은 5년 전과 또 달라서 같은 요일에 <환승연애> 같은 몇 단계 높인 리얼리티 콘텐츠가 유통되고 있다. 그런데 5년 전과 달라진 점이, 나아진 점 없다보니 2015~6년도 시절 <나혼산>을 보는 듯한 매너리즘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번 논란도 결국은 프로그램과 시청자 사이의 정서적 괴리에서 발생한 일이다. 몰래카메라를 설정한 제작진은 아마도 기안84와 전현무가 단둘이 시간을 보내며 예전의 바이브를 되살리길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시청자들은 그 시절 커뮤니티에 대한 그리움 그 이상을 원하고 있다. 과거 회귀적인 선택이 시청자들의 기대와 엇갈린 셈이다.

때로는 논란과 아픔과 실패가 새로운 기회의 초석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수습에만 몰두할 뿐, 변화의 기미는 잘 보이지 않는다. 매너리즘이 역력한 <나 혼자 산다>에는 대대적인 재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불만족의 시간이 길어지고, 관성에 의한 방송이 지속되면 이번처럼 언제 어디서, 또 무슨 논란과 해프닝이 다시 터질지 모른다. 옳든 그르든, 실제 문제가 얼마나 크든, 작든, 반복되는 논란을 수습하는 맷집에는 한계가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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