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산다’, 왜 더는 시대정신을 담지 못하는 걸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9주년을 맞이한 MBC 예능 <나 혼자 산다>는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6~8%를 오가는 시청률은 전성기 시절에 못 미치고 화제성은 없어지다시피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2049시청률이나 금요 예능 시청률 등에서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2년 간 했던 여러 방황을 마무리하고, ‘여은파’의 방향성도 재고하고, 가능할까 싶었던 ‘무지개’ 팀도 어느 정도 재건을 했다. 점점 더 역할과 비중이 커졌던 박나래의 어깨에 올린 짐을 다시 돌아온 전현무가 나눠 짊어지고, 이시언, 헨리 등 얼간이 형제들이 빠지면서 비워진 인간미, 생활감각은 김광규의 복귀, 코드쿤스트 등의 발견으로 메우고 있다.

이제 친근한 이웃 같은 리얼리티는 찾아보기 힘든 인위적인 설정과 에피소드가 주를 이루는 방송이 됐지만 포맷의 고착화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느리지만 적절한 인적 쇄신을 통해 분위기를 다시금 만들어가고 있다. 가장 심대한 위기를 만들었던 핵심 멤버 기안84에 대한 제작진의 기만 논란은 기안84의 인간적 매력과 현재를 드러내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진행하며 완전히 잊혀졌다.

그러는 사이, 한혜진과 박나래를 중심으로 한 여은파 멤버들의 자리는 다시, 기안84, 박나래, 전현무를 주축으로 재편됐다. 난생처음 본 송민호와 기안84가 함께 캠핑을 가고, 박나래가 스튜디오 밖에서 더 큰 활약을 하는 등 이 주축 출연자들이 다른 게스트와 붙는 형식의 이벤트가 예전보다 많아졌다.

그런데 9년 동안 똑같을 수는 없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고, 실제로 성장한 이들이 다시 주역으로 나서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함께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던 2017년과는 달리, 성장 넘어서 성공 이후를 다룬다는 점이다. <나혼산>의 전성기와 맞물려 MC로서 최정상의 자리에 올랐다가, 번아웃 등으로 인해 잠시 내려온 전현무의 새해맞이 한라산 등반이 그 상징적인 에피소드다.

이런 변화된 코드를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나혼산>의 대표 메뉴가 된 새 집 마련이다. 최근 들어 거의 매회 무지개회원들의 집 구경을 한다. 타인의 집 구경은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성장 서사를 가동하기 힘든 위치에 오른 멤버들의 현재를 담아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설정이기도 하다. 성산동 빌라에서 시작해 한남동에 수십 억대 자가를 얻기까지 박나래의 성장 서사를 함께 지켜봤고, 마찬가지로 장안동 투룸 빌라에서 시작해 한남동 빌라로 옮긴 화사, 집을 넓혀간 경수진, 과천 주공에서 서초동으로 거처를 옮긴 것은 물론 수십억 대의 건물주가 되기도 한 기안84, 끝으로 애처로움이 캐릭터이기도 했던 김광규가 드디어 60평대 자가를 마련한 느린 성장 서사의 정점까지 지켜봤다.

‘무지개 회원급’ 출연자들이 보여주는 자택의 면모가 젊은 시절 작은 빌라에서 알뜰히 살며 청약을 통해 아파트를 마련하고 신혼 생활을 시작한 이시언과 같은 체감되는 성공기와는 거리가 멀지만(그래서 때때로 ‘나 혼자 잘 산다’라는 비판을 받는다), 주요 출연진들의 나이나 업력 등 위치상 성장이 아닌 성공 그 이후를 주목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 코드를 전면에 나서서 이끄는 이가 바로 최근 연달아 메인 에피소드를 맡으며 열일하고 있는 기안84다.

그의 에피소드는 이제 그다운 기행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인간적인 성숙함, 자아 탐색으로 초점을 옮겨가고 있다. 특히 지난 15일 방송에서 8개월 동안 작업해 첫 개인전 개최 에피소드는 마감에 쫓기고 대중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작업해야 하는 웹툰 작가라는 정체성을 넘어선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찾아가는 노력과 그의 작품 활동에 보이는 진중함과 진일보한 면모는 기안84라는 캐릭터의 확장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는 변화는 좋지만, 성장이 끝난 다음 성공 이후를 다루는 코드가 얼마나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로망일지 의문이 남는다. 예를 들어 경제적 안정을 이루고, 이른바 커리어나 자산 면에서나 경제적 자유를 누릴 여유가 있는 기안 84의 인간적 성장에 대해서, 이사한 지 1년도 안 된 시점에서 다시 월세 100만원 수준의 작업실로 쓸 개인 공간을 구하는 경수진의 에피소드에 공감하고 로망을 공유하는 시청자들이 얼마나 많을지는 의문이다.

5~6년 전 욜로가 화두였다면, 얼마 전까지는 성공한 삶을 보여주는 영앤리치가 시대적 로망이었다. <나혼산>도 이를 의식했는지는 모르지만 고가의 주택과 삶의 모습이 많이 전시됐다. 그러나 이제 거기서도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그런 오늘날 집을 구하는 것을 넘어서 작업실을 구하는 데 대한 로망 투여가 얼마나 가능할까. 부와 성공의 전시를 넘어서서 성공 이후의 고민과 삶을 담는 것이 얼마나 대중들에게 와 닿을 수 있는 공감요소가 있을까.

최근 <나 혼자 산다>의 파장이 잠잠해진 이유가 이런 고민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떠나간 시청자, 유입되지 않는 새로운 시청자들과 싱크를 맞추기 위해서는 간혹 터지는 일회적인 캐스팅으로 승부수를 볼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일종의 시대정신을 담은 코드를 잡을 필요가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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