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체크인’, 벌써부터 이효리의 다음 체크인이 기다려진다
이효리의 다음 챕터, 김태호 PD의 다음 챕터. ‘서울체크인’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남지우·이승한·정석희 세 명의 TV평론가가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TV삼분지계]를 통해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티빙이 선보인 파일럿 예능 <서울체크인>은 “처음은 아니지만 처음인 프로그램”이란 모순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효리와 김태호 PD의 협업은 처음이 아니다. 두 사람은 이미 <무한도전>과 <놀면 뭐하니?>를 통해 여러 차례 함께 협업을 한 바 있다. 하지만 김태호 PD가 이효리를 온전히 주인공의 자리에 모시고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니까 처음은 아니지만, 처음이다.
이효리가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먹으며 어떤 고민을 하는지 따라가는 형식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서울체크인>은 기획만 놓고 보면 새로운 프로그램은 아니다. 이효리의 일거수일투족은 언제나 수많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소재였다. 하지만 <서울체크인>은 서울에서 보내는 톱스타로서의 화려한 삶과, 흙을 만지며 사는 제주의 평온한 삶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이효리를 다뤄왔던 기존의 접근 방식을 피해간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 트렌드 아이콘으로서의 이효리와, 수수하고 평온하게 나이 먹어가는 이효리가 첨예하게 얽힌 채 공존하는 모습을 이처럼 웃음기 없이 고스란히 담아낸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서울체크인>이 처음이다. 다시, 처음은 아니지만, 처음이다.
이 ‘처음은 아니지만 처음인’ 파일럿 예능이 공개되자마자, 시청자와 평단은 일제히 환호로 맞이했다. <서울체크인>은 콘텐츠 공개 당일인 지난 29일 티빙 전체 콘텐츠 중 인기콘텐츠 1위, 유료가입기여 1위를 기록했다.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가 이 야심 찬 파일럿에 주목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정석희 평론가는 “남다른 행보로 어느 누구보다 의미 있게” 나이를 먹어가며 매번 새로운 화두를 던져온 이효리가 이번엔 “나이 들어가는 댄스 가수들”을 돌아보는 시도를 한 점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 김완선-엄정화-이효리-보아-화사의 회동으로 시동이 걸린 ‘여성 댄스 가수 순회 공연’ 기획이, 한국 사회에서 여성 댄스 가수로 나이 먹는 일과 그들 사이의 유대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는 평이다.
남지우 평론가는 <서울체크인>을 ‘구원등판한 선발투수 이효리’라는 말로 요약한다. <놀면 뭐하니?>의 부진을 ‘싹쓰리’와 ‘환불원정대’ 특집으로 방어해내고, 코로나19로 자칫 밋밋해질 뻔한 2021 MAMA를 자신의 상징성으로 돌파해 낸 것에 이어, <먹보와 털보>의 실패를 겪은 김태호 PD의 프리랜서 도전과 OTT 대격돌 시대를 헤쳐 나가야 하는 티빙까지 구원할 기세라는 의미다.
두 평론가가 이효리의 압도적인 성취에 집중했다면, 이승한 평론가는 김태호 PD가 ‘잘 해왔던 것’과 ‘하고 싶었던 것’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서울체크인>을 분석했다. 캐릭터 쇼에 익숙한 김태호 PD에게 이효리라는 전무후무한 캐릭터가 주는 안정감이 전자라면, 발굴한 아이템을 확장하는 게 오랜 소망이었던 김태호 PD에게 마침내 이효리라는 우주를 탐험할 기회가 생겼다는 건 후자다.

◆ 새로운 화두를 던져 온 이효리의 40대
SBS <일요일이 좋다> ‘체인지’에서 서른이라는 나이로 인해 눈물을 쏟았던 당대 톱스타 이효리는 불혹을 훌쩍 넘은 나이 때문에 티빙 <서울 체크인>에서 또 한 차례 눈물지었다. 여자 나이 마흔, 가슴 한 구석이 쿵하니 내려앉는 쓸쓸함은 아마 그 시간을 지나봐야 아는 감정일 게다. 급작스런 눈물에 피천득의 수필 ‘인연’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나는 사십이 넘은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을 드물게 본다. ‘원숙하다’ 또는 ‘곱게 늙어간다’라는 말은 안타까운 체념이다. 슬픈 억지다.” 그리고 ‘착하게 살아온 과거, 진실한 마음씨, 소박한 생활, 아직도 가지고 있는 희망, 그런 것들이 미의 퇴화를 상당히 막아낼 수는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작고한 노작가의 글이 작금의 시대상과 부합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바로 ‘막아내기’라는 대목 때문에 생각났지 싶다. 서른에서 마흔 넷까지, 남다른 행보로 어느 누구보다 의미 있게 보낸 십여 년이 아닌가.

채식과 유기 동물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낸 온스타일 <골든12>(2012)를 시작으로 이효리의 방송 출연은 언제나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한때 김수현 작가가 우리가 무심히 넘기며 살아온 사회적 사안을 드라마에 녹여내 시청자를 각성시켰듯이 이효리 또한 매 등장마다 생각할 거리를 제시해 왔으니까. 그리고 빤하지 않은 관계와 그 관계가 빚어내는 매력들을 소개한다.
이번 <서울 체크인>에서는 나이 들어가는 댄스 가수들이다. 어린 나이에 일본 쇼케이스 무대를 망친 후 무대공포증이 생겼다는 보아, 그 어린 아이가 안쓰러워 울컥하는 엄정화, 그 모든 것에 초연한 김완선, MBC <놀면 뭐하니?>에서의 한 마디 농담으로 ‘싹쓰리’가 탄생했듯이 이 국가대표급 댄스 가수들의 순회공연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몸은 연예계에서 한 걸음 멀어졌다 해도 마음만 먹으면 즉시 중심축으로 귀환 가능한 이효리이기에 기대하게 된다. <서울체크인>에서 김태호 PD는 뭘 했느냐고? 특급 섭외도 능력이다!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 특급 선발투수의 구원등판
야구에선 아주 가끔 있는 일이다. 경기 후반부에, 벼랑 끝에 몰린 팀이, 수비 차례에, 더는 점수를 잃을 수 없고, 잃는다면 패배가 99% 확정되는 순간. 불펜 투수가 아닌 선발 자원의 선수가 마운드에 오르는 광경이 펼쳐진다. 물론, 이 상황에 선 선발투수가 기존의 불펜진보다 잘 던지리란 보장은 없다. 선발에겐 마무리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데다, 이렇게 예외적인 경우까지 대비하며 훈련을 하지도 않는다.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인 류현진은 KBO에서 아홉 번, 그리고 메이저리그 진출 후엔 단 한 번의 구원 등판만을 경험했다. 나 역시 중학생 때부터 야구를 보았지만, 이 진귀한 장면을 실시간으로 직접 확인한 일은 한 번뿐이었다.
한국 대중문화 역사상 최고의 선발투수, 이효리의 최근 행보는 이 ‘구원 등판’의 상황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벌써 몇 번이나 자기 이름을 건 프로그램을 선보인 적 있는, 이미 어떠한 반열에 오른 특급 예능인이다. 너무나 명백한 선발 자원인 이효리는 2020년, MBC <놀면 뭐하니?>의 구원 요청에 처음으로 응했다. 꽤 오래 부진하던 <놀면 뭐하니?>는 이효리의 등판과 함께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고, ‘싹쓰리’와 ‘환불원정대’의 연이은 흥행은 프로그램 자체를 방송국의 간판급으로 격상시켰다.

이효리의 두 번째 구원은 이듬해인 2021년,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이하 ‘MAMA’)에서 이루어진다. MAMA는 흥행을 책임질 만한 아이돌 그룹이 부재한 상황과 코로나19 사태 등, 시상식 내외부의 악재를 이효리라는 카드와 함께 돌파하기로 한다. ‘13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호스트’와 같은 대대적인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이효리는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댄서들과 피날레 무대를 장식한다.
그리고 2022년, 바로 이날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 티빙 오리지널 <서울체크인>은 이효리의 세 번째 구원 등판과도 같다. 이효리는 앞서 넷플릭스 예능 <먹보와 털보>를 거하게 말아먹은 김태호 PD를 먼저 구원한 뒤, OTT 대격돌 양상에서 불안에 떨고 있는 티빙(TVING)이라는 플랫폼까지 구원하려 한다. 야구라면 9회 말, 불펜 투수의 중책을 맡게 된 선발투수 이효리의 첫 피칭은 가볍고, 산뜻하며, 긴장감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유쾌했다. 포수를 자처한 엄정화와의 배터리 호흡 역시 완벽하다. 어쩜 이렇게 다 잘할까. 나는 이런 야구선수를 본 적이 없다.
남지우 칼럼니스트 Instagram @jmbar_jwjw

◆ 벌써부터 다음 체크인이 기다려진다
김태호 PD는 과거 <무한도전>의 특징을 ‘캐릭터 쇼’로 정의한 적이 있다. <무한도전>이 매번 다른 아이템에 도전하면서도 그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멤버들의 선명한 캐릭터들이 중심을 잡아줬기 때문이라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김태호 PD가 MBC를 떠나 선보인 첫 작품이 이효리가 서울에서 보낸 2박 3일을 다룬 <서울체크인>인 건 당연해 보인다. 이효리는 데뷔 이래 한 번도 트렌드 밖으로 밀려난 적 없는 컬쳐 아이콘이자, 농사로 흙이 낀 손톱부터 이불을 대강 둘러 만든 드레스까지 근사해 보이게 만드는 괴력을 지닌 전무후무한 캐릭터 아닌가.
한 편으로는 자신이 뿌려 둔 씨앗이 다른 곳에서 싹을 틔우는 걸 봐야 했던 김태호 PD의 해방감도 엿볼 수 있다. 김태호 PD는 ‘대한민국 대표 예능’이자 ‘MBC의 대체 불가한 효자 프로그램’ <무한도전>에만 매여 있느라 자신이 발굴한 아이템을 확장해 볼 기회가 없었다. 그동안 <무한도전>의 대표 아이템이었던 ‘추격전’은 SBS <런닝맨>의 직접적인 영감이 되었고,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이 선보인 ‘길거리 토크쇼 잠깐만’은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원형이 되었다.

그걸 지켜만 봐야 했던 김태호 PD가, MBC를 떠나자마자 이효리와의 협업을 택한 건 상징적이다. 이미 그는 <무한도전> ‘토토가’ 특집, <놀면 뭐하니?> ‘싹쓰리’ 특집, ‘환불원정대’ 특집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인간 이효리의 매력과 고민, 동료 여자 가수들과 쌓아온 끈끈한 유대감을 확인한 바 있다. 본격적으로 협업해 더 확장된 세계를 탐험해 보고 싶은 파트너임은 분명했으리라. 이효리가 제안한 ‘여가수 유랑단’ 아이디어 또한 ‘환불원정대’를 통해 이효리가 보여준 야심과 그 결을 같이 하는, 해당 기획의 확장 아닌가.
다시 말해 이효리는 김태호 PD가 충분히 알고, 함께 확장해 나갈 수 있는 이야기가 많으며, 그렇게 확장한 이야기들을 너끈히 지탱해 낼 수 있을 만큼 그 중력이 강력한 유일무이의 캐릭터다. <무한도전>부터 <놀면 뭐하니?>까지 MBC에서의 한 철을 유재석과 함께 보낸 김태호 PD가 러브콜을 보낸 다음 동반자가 이효리라는 건 그런 의미에서 흥미진진하다. 벌써부터, 두 사람이 협업할 이효리의 다음 체크인이 기다려진다.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사진=TVING. 그래픽=이승한]
관련기사
- 어째서 이효리와 함께 하면 주변사람들까지 빛나는 걸까(‘서울체크인’)
- 유재석과 김태호PD, 밀월 끝낸 두 레전드의 엇갈린 선택
- 회당 제작비 6억원, 풍요 속 마주한 김태호PD의 숙명(‘먹보와털보’)
- 이효리 '거꾸로 해도 이효리' [EM포토]
- 김태호에게도, 나영석에게도 기존 예능판이 너무 좁아졌다는 건
- 이효리 '제주댁 출구 없는 매력'
- 김태호PD가 반만 쓰이던 이효리를 오롯이 드러낼 수 있었던 건
- ‘서울체크인’과 ‘솔로지옥2’, OTT마다 되는 예능 따로 있다
- 이효리의 추앙은 엄정화도 김완선도 빛나게 한다(‘서울체크인’)
- 이효리와 ‘술꾼 제주 여자들’의 꿈만 같은 1박2일(‘서울체크인’)
- 그렇게 많이 소비됐어도 이효리가 여전히 뜨겁다는 건(‘서울체크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