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이혼 사이’, 일반인 부부 리얼리티의 놀라운 수위

[엔터미디어=정덕현] “생각이라는 걸 처 안하나? 아메바가?” “주둥이에서 쳐 나오는 소리하고는!” “대가리 개 돌빡이가?” “머리가 나쁘면 남 시키라니까? 돈 벌어 온다 아이가. 왜 고생하는데? 평생 고생만 해봐서 그러냐? 편하게 사는 것도 뭐 능력이 돼야 편하게 살지.”
티빙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 <결혼과 이혼 사이>에서 관찰카메라에 담긴 말들은 충격적이다. 한 마디도 아니고 두 마디 세 마디 계속 이어지는 폭언과 욕설에 갈수록 분노게이지가 상승하는 남자. 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이 남자가 폭언을 하는 상대가 바로 아내라는 사실이다. 아내는 이런 폭언이 익숙한 듯 그저 고개를 숙이고 듣다가 남편이 제 화에 못 이겨 그 자리를 벗어나자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남편의 폭언은 그게 끝이 아니다. 밥상머리에서도 계속 이어졌고 “와이프한테 욕을 하는 게 아니지 않냐?”고 항변하는 아내에게 “왜 와이프라고 넘어가줘야 돼?”라고 남편은 되묻는다. 아내의 말대로 이 남자는 아내를 직장 부하직원 대하듯이(사실 이것도 상식적으로는 안 되는 일이지만) 막 대한다.

<결혼과 이혼 사이>가 공개한 첫 화는 이 부부 관찰예능의 수위가 상상 이상이라는 걸 말해준다. 그 영상을 스튜디오에서 보던 출연자들조차 모두 ‘입틀막’을 하고 경악하는 표정을 드러낼 정도다. 김구라도 놀라워하며 특유의 인상을 쓰면서 혀를 찼다. 김이나는 계속 쏟아지는 폭언에 “나 울 것 같다”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부부의 영상은 <결혼과 이혼 사이>에서 가장 센 수위의 내용이 아니다. 첫 회는 의도적으로 약한 수위부터 갈수록 높아지는 수위의 영상들을 차례로 보여줬는데, 첫 번째 등장한 부부는 아내의 카드로 명품 신발을 사갖고 들어와 철없이 자랑을 늘어놓는 남편의 이야기였다. 주로 아내가 돈을 벌고 남편은 뮤지컬 배우라 수입이 부정기적인 이 부부는 현실적인 돈 문제가 아니라 남편의 이런 철없는 마인드 때문에 갈등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 영상이 먼저 소개됐을 때도 김이나는 “거짓말하지 마요. 빌런 만들려고”라며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만든 영상이 아니냐고 할 정도로 믿기 힘든 상황이라는 걸 어필했다. 하지만 그건 본격적인 이 관찰카메라의 충격적인 장면들의 시작도 아닌 순하디 순한 상황일 뿐이었다. 바로 이어진 폭언을 하는 남편의 영상이 이어지면서 그 상황을 순하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언하는 남편 다음에 이어진 영상은 더 충격적이었다. ‘분노조절장애’가 있어 약까지 먹고 있다는 남편은 폭언은 물론이고 물리적인 폭력까지 쓰는 모습을 보여줬다. 거의 폭발지경이 되면 혼자 방에 들어가서 진정시키려 노력한다는 이 남편은 그나마 자신이 ‘분노조절장애’를 갖고 있고 그래서 이를 고치기 위해 병원도 다니는 노력을 하고는 있었지만, 화를 참지 못해 아내에게 쏟아내는 폭언, 폭력은 한 마디로 지옥처럼 보였다.
물론 남편들만 모두 문제를 드러내는 건 아니었다. 마지막에 소개된 부부의 사례는 남편이 집요해서 끝까지 자기 논리가 강요하는 게 힘들다고 했지만, 관찰카메라 안에 포착된 내용들을 보면 아내가 더 집요하게 남편에게 자기 논리를 쏟아내는 것처럼 보였다. 즉 자기 입장에서만 보이는 상황들이 있고, 그래서 다른 관점으로 보면 상황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이 관찰카메라는 보여주기도 했다.
<결혼과 이혼 사이>가 이혼 위기에 직면한 일반인 부부들을 출연시키고 이들의 일상 속 갈등들을 관찰하게 된 건, 사실상 우리의 관찰예능도 해외의 리얼리티쇼와 거의 같아지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물론 이 관찰예능은 이들 부부들에게 일련의 미션 상황들을 제시함으로써 갈등을 넘어 어떤 소통과 화해의 지점을 모색할 것으로 보이지만, 당장 드러나는 수위는 보는 이가 충격을 먹을 정도로 살풍경하다.

일반인들의 사생활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리얼리티쇼는 우리에게는 정서적으로 불편하다 여겨져 20년 정도의 시간을 에둘러 조금씩 우리네 방송가로 들어온 게 사실이다. 처음에는 연예인 가족, 특히 아이들이 카메라에 담겼고 그러다 ‘혼자 사는 삶’ 같은 사회적 맥락을 넣어 연예인 관찰카메라가 일상화되더니 그 다음에는 연애, 결혼생활 속으로 그 영역을 확장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TV조선이 <우리 이혼했어요>로 열어 놓은 이혼이나 파경을 관찰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과연 <결혼과 이혼 사이>는 얼마나 높은 수위의 충격적인 부부 갈등을 카메라에 담을까. 그건 다만 자극적인 소비로 흘러가게 될까 아니면 갈등을 화해로 이끌어내는 반전을 보여줄까. 아직은 등장하지 않은 전문가들의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다음 회에 예정된 ‘법률 전문가’가 개입된 일련의 미션이 이 충격으로 시작한 관찰카메라의 방향성을 보여줄 거라 예상된다. 과연 <결혼과 이혼 사이>는 자극과 진정성 사이 어디로 갈 것인가.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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