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까지 준비한 윤여정, 시상에도 품격이 있다(‘뜻밖의 여정’)

[엔터미디어=정덕현]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 남우조연상 시상자로 나선 윤여정은 “인생은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그건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나리>로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받았을 때 자신의 이름을 발음하기가 어려워 이상하게 부른 분들을 이 자리에서 모두 “용서하겠다”고 했던 걸 뒤집어 농담으로 풀어내기 위한 첫 마디였다. 그는 후보에 오른 이들의 이름이 발음하기 만만찮다며 미리 용서를 구하는 특유의 유머 가득한 말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번 시상식에서 윤여정의 시상이 화제가 됐던 건, <코다>에서 아버지 역할을 연기한 실제 청각장애인 트로이 코처의 남주조연상을 발표할 때 그를 위해 수어로 마음을 전한 부분이었다. 그는 이름을 호명하기 전에 먼저 수어로 “축하합니다. 사랑합니다. 제 진심을 담아서.”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처음에는 그게 무엇인지 잘 몰랐던 그 곳에 있던 이들은 금세 그걸 알아채고 환호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가장 먼저 자신이 남우조연상을 받게 됐다고 알아차린 건 트로이 코처였을 터였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시상자로 참여하게 된 윤여정을 따라 그 이면의 이야기를 담은 tvN 예능 <뜻밖의 여정>은 어떻게 그런 수어가 준비될 수 있었는가를 보여줬다. 마지막까지 비밀에 부쳐지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사실 누가 상을 받을 지는 발표 직전까지도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윤여정은 누가 받더라도 혹여나 실수 하지 않기 위해 꼼꼼히 후보자들의 이름과 그 발음을 외웠고, 그 중에서도 트로이 코처가 받게 된다면 그를 위한 수어를 준비하고 있었다.

<뜻밖의 여정>에 담겨진 윤여정의 시상을 준비하는 모습은 그래서 그가 사랑받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잘 드러내줬다. 대단한 순발력과 유머감각이 바로 윤여정을 더욱 빛나게 하는 점이라는 건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통해 익히 알려진 바였다. 심지어 그 수상소감 때문에 올해도 시상자로 나선 그가 어떤 ‘스피치’를 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을 현지 기자들은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데 <뜻밖의 여정>이 보여준 건 그런 말 한 마디가 그저 재치가 아닌 윤여정이 가진 진심어린 마음에서 비롯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코다>를 보고 진심으로 트로이 코처가 상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걸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줬다. 그래서 실제 그가 수상자가 됐다는 걸 발견한 윤여정의 얼굴과 그가 준비해온 수어에는 마치 자신이 상을 받은 것만 같은 기쁨과 존경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무대에 오른 트로이 코처에게 전달해줬던 트로피를 갑자기 다시 받아준 윤여정의 모습에 장내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마치 줬던 걸 뺏는 듯한 광경이 우습게 느껴져서였을 게다. 하지만 금세 그것도 역시 트로이 코처가 양손으로 수어를 해가며 수상소감을 할 수 있게 하려한 윤여정의 배려였다는 게 드러났다. 윤여정은 모두가 트로이 코처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가 소감을 말할 때 옆에서 그에게 집중하며 존경의 시선과 감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모습을 숙소에서 TV로 보고 있던 나영석 PD와 신효정 PD는 그 남다른 소회를 드러냈다. 감동한 듯한 신효정 PD는 남몰래 눈물을 훔쳤고, 나영석 PD는 “멋있다. 진짜 멋있다. 게다가 이 상을 선생님이 줘서 더 멋있었다”고 말했다. 아마도 아카데미 시상식을 봤던 모든 이들이나, <뜻밖의 여정>을 통해 그 준비과정을 봤던 시청자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만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수상자가 아닌 시상자로 참여한 것이지만, 시상에도 품격이 있다는 걸 윤여정은 확인시켜 줬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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