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하게’가 범인 찾기 속에 담아놓은 진심, 진실 찾기

[엔터미디어=정덕현] JTBC 토일드라마 <힙하게>라는 제목은 마치 ‘힙합’ 같은 재기발랄한 이미지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드라마는 이를 코믹으로 뒤집어 놨다. 즉 봉예분(한지민)이 어느 날 소 농장에 갔다가 소의 엉덩이를 만지는 순간 유성이 떨어지면서 갖게 된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슬쩍 비꼬듯 제목에 담아놓은 것이다. 사이코메트리 능력이라면 뭔가 ‘힙한’ 느낌을 주지만, 그 능력이 누군가의 엉덩이를 만져야 발휘될 수 있는 봉예분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힙하기보다는 어딘가 엉뚱하고 때론 찌질하게까지 보이는 능력이 바로 봉예분의 사이코메트리다.

<힙하게>라는 드라마가 따온 “힙하다”는 말은 언젠가부터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오게 됐다. 힙플레이스, 힙한 곳, 힙한 것들을 이야기하며 사람들은 그곳을 찾아가거나 그것을 가지려 한다. 아마도 ‘트렌디하다’는 뜻과도 통할 법한 이 말을 과거에는 “떴다”는 말로 쓰곤 했던 것 같다. “요즘 거기가 뜨고 있대”라고 했던 그 표현을 “요즘 거기가 힙하대”라고 쓰는 식이다.

<힙하게>는 왜 제목과는 정반대되는 촌스럽고 찌질한 상황을 그리면서 이런 제목을 달아 놨을까. 그건 힙한 것과 힙한 곳만 찾는 세상에 대한 날선 풍자의 의미가 담겨 있다. 도대체 힙한 건 좋은 것이고 촌스러운 건 왜 나쁜 것인가. 왜 힙한 것에만 사람들이 몰려 들고 촌스러운 것은 사람들이 외면해 심지어 사멸의 위기까지 놓이게 되는 것일까. 이른바 ‘지역 소멸’의 불안을 겪고 있는 지방을 떠올려 보면 <힙하게>가 왜 제목과는 사뭇 거리가 있는 무진시라는 촌동네를 배경으로 삼았는가를 새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힙하게>는 또한 제목과는 걸맞지 않은 무진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능청스런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이들은 힙하기보다는 촌티가 가득하고 그만큼 해학적이다. 인물 하나하나가 ‘힙한’ 것과는 정반대의 의외성을 보여주며 그것이 웃음의 코드로 등장한다. 예분의 절친인 배옥희(주민경)는 일진 출신으로 한 때 한가락 했던 인물이지만 그가 예분을 도와 하는 짓은 후배들을 모아 엉뚱한 일에 투입시키는 그런 일이다.

경찰이지만 공권력을 남편 바람기 추적하는데 쓰는 나미란(정이랑)이나 충청도 사투리의 진의를 번역기처럼 옆에서 대신 해석해주는 배덕희(조민국)도 그렇고, 장군님을 모셔도 맥아더 장군을 모시면서 영어 한 줄 못해 외국에서 지내다 온 아들과 대화 하나 못하는 무당 박종배(박혁권)도 그렇다. 예분의 이모인 정현옥(박성연)과 무진 경찰서 강력반장 원종묵(김희원)이 그리는 멜로 또한 마찬가지다. 두 사람의 멜로는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그림과 음악을 깔고 펼쳐지지만 그 면면은 ‘쉰다섯 쉰하나’의 풍경으로 그려진다.

<힙하게>는 이처럼 힙한 것과는 정반대의 토속적이고 촌티 가득한 무진시 사람들의 이야기(심지어 초능력까지도)를 가득 채워 놓았다. 그리고 중반 이후부터는 도대체 누가 연쇄살인범인가를 추리하는 이야기 속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인다. 외지에서 들어와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 선우(수호)가 범인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들고, 차주만(이승준) 의원이 과거 재개발 이슈로 많은 이들을 절망의 나락 속에 빠뜨렸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그가 혹 범인이 아닌가 생각하게 만들었다가 갑자기 예분의 할아버지인 정의환(양재성)과 차주만이 칼에 찔린 채 쓰러져 있는 상황을 연출하며 사건을 오리무중으로 끌고 들어간다.

예분이 가진 다소 엉뚱하고 촌스럽게 보이는 사이코메트리 능력은 그래서 문장열(이민기) 형사와 함께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활용되지만, 진짜 이 능력이 드라마에서 목표로 하는 곳이 따로 있다. 그것은 진실과 진심 찾기다. 어머니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과 선한 얼굴을 했지만 사실은 마을 사람들을 절망으로 내몰았던 국회의원 차주만의 진실이 그것이고, 또 하나는 겉으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끈끈한 정을 보여주는 배옥희부터 전광식(박노식) 같은 무진시 사람들과 특히 늘 퉁명스럽게 대해 자신을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은 줄 알았지만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던 할아버지 정의환의 진심이 그것이다.

그리고 사건을 수사하면서 알게 된 차주만 의원의 두 얼굴과 그로 인해 마을 사람들의 가슴 깊숙이 남아 있는 아픈 상처들은 <힙하게>가 그리는 ‘힙한 것’과 ‘촌스러운 것’의 대결구도를 분명히 세워 놓는다. 도시 재개발을 통해 무진시를 힙플레이스로 만들어 지역을 활성화시키겠다는 달콤한 거짓말로 결국 무진시 사람들을 나락 끝으로 떨어뜨린 차주만 의원 같은 정치인들의 추악함과, 그렇게 당하고도 동네 사람들 사이의 끈끈함이 남아 있는 무진시 사람들의 정겨움의 대비가 그것이다. 어떤 것이 진정 힙한 것인가. ‘힙한 것’을 가장한 거짓말인가, 촌스럽게 보여도 인간의 온기가 느껴지는 정겨움인가.

실제로는 허망한 거짓이지만 힙한 것이라는 말에 경도되는 세상은 그 번지르르함의 이면에 누군가의 절망 같은 그림자를 남긴다. <힙하게>는 바로 그 지점을 코미디로 꺼내 날선 풍자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조금 낡았고 개발되지 않아 촌스럽게 느껴져도 그렇기 때문에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그런 곳이 진정한 ‘힙한 곳’이 되기를 이 드라마를 웃음 끝의 진한 페이소스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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