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KBS 주말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는 최근 가짜 동생 행세를 하는 홍연홍(조미령)이라는 자극적인 조미료를 꺼내들었다. 송영달(천호진)이 어려서 잃어버린 진짜 동생 강초연(이정은)에게 여러 차례 은덕을 입었지만, 홍연홍은 빚에 쪼들리다 결국 해서는 안되는 선택을 한다.

시청자들은 그동안 특별한 악역 없이 훈훈하게 전개되어 왔던 드라마가 갑자기 이런 최악의 인물을 등장시킨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제 아예 송영달의 집에 들어와 장옥분(차화연)에게 이런 저런 일들을 시키며 갖은 밉상 짓을 하는 이 인물 때문에 훈훈했던 드라마의 분위기는 편안히 즐기기가 어렵게 됐다.

가짜인 줄도 모른 채 그의 빚까지 갚아준 송영달은 점점 답답한 캐릭터가 되어가고, 이런 짓을 하고도 모자라 이제 시장 상인들에게 사기치려는 홍연홍의 뻔뻔함에 시청자들은 점점 보기 불편해진다. 게다가 이혼했던 송나희(이민정)와 윤규진(이상엽)이 다시 만나고, 송나희의 동생 송다희(이초희)와 윤규진의 동생 윤재석(이상이)이 가까워지면서 겹사돈 설정 또한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송가희(오윤아)와 박효신(기도훈)의 너무나 큰 나이 차가 나는 커플의 탄생 또한 예고하고 있다.

시작은 이혼을 한다고 해도 잘 살 수 있다는 괜찮은 설정으로 시작했지만, 갈수록 주말드라마의 공식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출생의 비밀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결국 등장시킨 뒷목 잡게 만드는 악역과 다소 뻔해 보이는 겹사돈 설정, 연상연하 커플 등등이 그렇다. 이런 애초 기대와 달리 뻔한 결말을 향해가는 이야기에 시청자들은 역시 가족드라마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할 법하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가족이라는 소재는 아무 죄가 없다. 다만 가족을 다루는 방식이 수십 년 간 달라진 것 없는 클리셰들을 여전히 계속 반복해 사용한다는 것이 죄라면 죄다. 이를 방증하는 건 최근 종영한 tvN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다. 이 드라마는 가족을 소재로 했지만 우리 시대에 달라진 가족관을 본격적으로 담아냄으로써 큰 감동을 선사했다.

사정은 멜로드라마도 마찬가지다. KBS <그놈이 그놈이다>는 비혼주의라는 색다른 소재로 시작했지만 갈수록 비혼을 다룬다기보다는 대시하는 남자들과의 밀고 당기는 로맨스에 집중함으로써 결국은 뻔한 멜로 그 이상을 담아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사정은 JTBC <우리, 사랑했을까>도 마찬가지다. 싱글맘 앞에 나타난 네 남자와의 로맨스는 저 <맘마미아>를 떠올리게 한다. 결국 멜로하면 떠올리는 남녀 간의 밀당 그 이상의 색다른 의미나 메시지를 담지 못하는 이들 멜로드라마는 시청률에서도 화제성에서도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멜로가 죄는 아니다. 똑같은 멜로를 갖고 있으면서도 색다른 소재와 인물을 탄생시키고 거기에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담아낸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보면 멜로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완전히 새롭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사실 기획의도는 번지르르하게 시작하고는 결국은 클리셰들이 범벅되어 있는 드라마들을 보면 굳이 왜 이런 드라마들을 제작하는가가 의아해진다. 특히 가족드라마나 멜로드라마는 그간 우리네 드라마가 써온 무수히 많은 클리셰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반복해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적당한 관계를 세워놓고 마치 ‘드라마 게임’ 하듯 관계를 꼬고 하는 방식으로 그려내는 드라마들. 한때는 먹혔을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에게는 여지없이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지금 같은 시청자들의 눈높이에서 클리셰 범벅이 된 그저 그런 뻔한 멜로나 가족드라마가 성공할 확률은 거의 없다. 그러니 이런 작품이라면 기획단계에서 수정하거나 배제하는 편이 제작사에도 또 방송사에도 나아가 시청자들에게도 좋을 일이다. 게다가 애꿎은 멜로나 가족 소재 자체가 식상하다는 편견과 선입견까지 만드는 민폐가 아닐 수 없다. 달라진 환경을 알고 있다면 누구나 시놉시스 단계에서 혹은 첫 회 대본만으로도 판단가능한 일이 아닌가.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tvN, 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