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때리는 그녀들’, 이들의 진심이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이게 뭐라고 목숨 걸고 뛰는 걸까. 한 골을 먹으면 하늘이라도 무너진 듯 쓰러진다. 하지만 곧바로 일어나 “괜찮아!”를 외치고 “집중!”하라고 동료들을 독려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열망이 모여 결국 만회골을 넣고 세상 모든 걸 얻은 듯 환호한다. 그들의 눈가는 이미 촉촉해져 있고, 그저 재미로 앉아 보던 관객들조차 왜 흘리는지 모를 눈물을 흘린다. 월드컵부터 올림픽까지 각종 국제대회를 중계했던 배성재 아나운서는 골이 들어갈 때마다 과몰입한 목소리를 쏟아낸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이 보여주는 건 예능이 아니다. 스포츠다. 그간 프로스포츠나 올림픽 때 잠시 주목했던 그런 스포츠들이 다소 무덤덤했다면, 놀랍게도 이 예능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여자축구는 심장이 뛴다. 그건 이들이 파일럿 때보다 엄청나게 일취월장해 돌아온 그 기량 때문만은 아니다. 그 성장을 위해 뛰고 뛰었을 그 노력들이 거기서 묻어나고, 무엇보다 축구에 대한 이들의 ‘진심’이 느껴져서다. 그 진심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들었던 이들의 감독들, 황선홍, 이천수, 최진철, 이영표 같은 이들의 가슴에도 와 닿는다. 감독들은 선수들의 간절한 마음을 알기에 저도 모르게 뭉클해진다.

<골 때리는 그녀들>은 처음 파일럿으로 방영됐을 때만 해도 그저 최근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스포츠예능, 그 중에서 여성이 뛰는 스포츠예능의 하나 정도로 시작했다. 거기에는 문제도 적지 않았다. 당장의 시선을 잡아끌기 위해 출연자들을 ‘○○의 아내, ○○의 며느리’ 같은 지칭으로 부르고 심지어 운동복에도 그런 식으로 이름을 적어 대중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여성이라는 걸 굳이 내세워 남자축구와 비교하는 해설 역시 문제였다. 시청자들의 관심은 높았지만 여성을 담는 차별적인 시선은 한계로 지목되었다.

하지만 정규편성되어 돌아온 <골 때리는 그녀들>이 이런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건 다름 아닌 파일럿 때 처음 경험해본 축구에 진심으로 빠져든 출연자들의 열정이다. 당시 모델들로 구성되었던 구척장신팀은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하고 패한 바 있다. 그런데 발톱이 빠지는 부상까지 입었지만 팀의 주장 한혜진은 곧바로 “저희 정규 언제 할 건데요?”라고 물으며 승부욕을 드러냈다.

국가대표 선수 출신 혹은 축구 선수 가족 출신으로 구성된 국대패밀리, 개그우먼들로 구성된 개벤져스, 모델팀 구척장신, <불타는 청춘> 출연자들로 구성된 불나방팀에, 외국인 방송인으로 구성된 월드클라쓰, 배우팀 액셔니스타까지 6개 팀이 참여한 ‘정규리그’는 한 게임 한 게임이 ‘각본 없는 드라마’ 그 자체였다.

그 중심에는 파일럿 때 막강한 전력으로 우승을 차지한 불나방팀의 박선영이 있었다. ‘절대자’, ‘타노스’ 같은 별칭으로 불리는 그는 단단한 피지컬은 물론이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뛰는 체력에 혼자서 두세 명의 방어진을 뚫고 들어가는 돌파력과 골 결정력까지 가진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그래서 FC 불나방팀과 그 팀을 이끄는 박선영을 최강자로 세워두고 나머지팀들이 그 최강팀을 꺾으려 투혼을 발휘하는 대결구도는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들었다.

새로 참여한 월드클라쓰와 불나방팀의 개막전은 무심코 보게 된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거 장난 아닌데”라는 말이 나오게 하기에 충분했다. 어떻게든 이기고픈 월드클라쓰팀의 사오리는 빠른 발재간과 승부욕으로 짜릿한 첫 골을 선사하며 이들의 경기가 진심이라는 걸 실감하게 했다. 물론 박선영의 막강한 기량에 밀려 3대1로 지긴 했지만, 패배 후 흘리는 월드클라쓰팀의 눈물은 예능의 물을 쪽 빼버린 진짜 축구의 매력 속으로 시청자들을 조금씩 빠뜨렸다.

두 번째 경기로 치러진 국대패밀리와 구척장신의 대결은 파일럿 당시 구척장신팀이 4대0으로 처절하게 패배했다는 사실 때문에 과연 리벤지 매치가 가능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것”이라며 선수들의 정신력을 강조한 구척장신팀의 주장 한혜진이 실제로 첫 골을 선사하면서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하지만 국대패밀리에 새롭게 투입된 땅콩검객 남현희가 골키퍼에서 최전방으로 투입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어떻게든 막아내려는 구척장신팀과 어떻게든 뚫어보려는 국대패밀리팀의 대결은 갈수록 치열해졌고 후반전도 그대로 이어지면서 구척장신팀의 첫 승이 예고됐다. 하지만 축구는 끝까지 가봐야 결과를 알 수 있는 법. 30초 정도가 남아 ‘마지막 공격’이라 생각했던 국대패밀리의 박승희가 찬 볼을 명서현이 동물적인 감각으로 무릎에 맞춘 골이 네트에 꽂혔다. 결국 1대1로 비긴 전후반 경기에 이어 피말리는 승부차기가 계속 됐고 아쉽게도 구척장신은 통한의 패배를 기록하게 됐다.

중요한 건 승패가 아니라 이들이 보여준 진심어린 투혼이었다. 뒤늦게 구척장신팀에 합류했던 차수민은 경기 내내 무표정한 얼굴로 강력한 방어와 공격력을 보여줬지만, 경기가 끝나고 난후 한혜진이 그의 발목에 더덕더덕 붙여진 보호장구를 보며 눈물을 흘리자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뒤늦게 합류해 뭔가 팀에 기여하기 위해 뛰고 뛰었을 그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결코 패배를 모를 것 같았던 불나방팀을 개벤져스팀이 엄청난 투혼으로 엎치락뒤치락하며 2대2로 전후반을 마무리하고, 승부차기 역시 계속 이어지다 결국 개벤져스팀이 승리한 경기는 보는 이들마저 울컥할 수밖에 없는 명승부로 기록됐다. 그 경기가 얼마나 진심이었는가 하는 점은 경기가 끝난 후 개벤져스팀의 부상으로 드러난다. 안영미는 경기 중 부딪친 얼굴이 잔뜩 부어 있었고, 오나미는 다친 발목에도 불구하고 절뚝거리며 끝까지 경기를 마쳤다.

<골 때리는 그녀들>은 어느새 축구를 너무나 잘 알아도, 또 전혀 축구를 몰라도 빠져들게 만드는 프로그램이 됐다. 물론 이들은 축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까지는 어설픈 모습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스포츠의 진짜 묘미는 그 기량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이 프로그램은 보여줬다. 어떻게든 이기고픈 승부욕과 진짜 좋아서 뛰고 또 뛰는 모습에서 묻어나는 진심들이 그 자체만으로도 ‘각본 없는 드라마’를 매번 써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축구를 하면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여성과 스포츠를 바라보는 방송의 차별적 시선을 훌쩍 뛰어넘게 해준다. 그래서 이들이 마음껏 숨이 찰 정도로 뛰고, 날아오르는 공에 온 몸을 던지며 받아내는 그 광경 자체만으로도 벅차오르는 감흥이 생겨난다. 해보니 드디어 축구가 이런 스포츠였다는 걸 알게 됐다는 여성 출연자들의 행복한 얼굴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의 가치와 성과는 충분하다. 시청자들 역시 그 행복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으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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