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참사 영상 사용 ‘펜트3’, 뭇매 맞아도 할 말 없는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불과 3개월도 지나지 않은 비극적인 참사 영상을 드라마 속 폭탄 테러 보도 장면의 자료화면으로 쓴다는 건 상식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일일까.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3> 뉴스보도 장면에 삽입된 ‘헤라팰리스 붕괴’ 폐허 장면의 영상이, 광주 학동 건물 붕괴 참사 관련 뉴스 영상을 그대로 갖다 붙여 사용했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펜트하우스3>의 헤라팰리스 붕괴 보도 뉴스 장면에 들어간 영상은 지난 6월 9일 SBS 뉴스가 광주 학동 건물 붕괴 참사 현장을 연결했을 때 나왔던 장면과 같다. 또 이날 방송 보도 장면에는 ‘포항 지진 이재민 뉴스 영상’도 사용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자극적인 장면을 위해 누군가의 비극을 끌어다 쓰는 드라마라는 질타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 논란은 <펜트하우스>가 그간 강변해온 허구이기 때문에 황당하고 자극적인 장면들도 용납될 수 있다는 그 논리의 허점을 드러낸다. 즉 <펜트하우스>의 패륜이나 폭력, 살인 같은 자극적인 장면들은, 잇따른 쌍둥이 설정 같은 황당한 개연성으로 인해 오히려 현실감을 주지 않아 괜찮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실제에서는 결코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 <펜트하우스>가 더 자극적인 전개를 해왔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연성까지 무너뜨려 ‘허구’의 세계라는 걸 적나라하게 드러낸 <펜트하우스>가 실제 현실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장면을 그 허구에 끌어다 썼다는 건 무얼 말해주는 걸까. 대놓고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이러한 허구성이 오히려 현실의 문제를 은폐하고, 나아가 현실의 비극마저 마치 허구처럼 둔감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이 논란을 야기한 뉴스 장면의 보도 내용은 헤라팰리스 붕괴다. 강남의 노른자위 땅에 세워진 100층 높이의 랜드마크 주상복합 건물의 붕괴. 주단태(엄기준)가 심수련(이지아)의 총에 머리를 관통당하며 추락할 때, 미리 설치해뒀던 폭탄의 기폭장치 버튼을 눌러 붕괴된 것. 욕망의 바벨탑 같았던 헤라팰리스의 붕괴는 부동산, 교육 1번지라는 그 신기루의 붕괴를 상징하려 한 것일 테지만, 그 과정은 전혀 개연성이 없었다.
놀라운 건 그간의 개연성을 무시한 전개 때문인지, 강남 한 복판에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는 주상복합 건물이 붕괴했는데 전혀 충격적이지가 않다. 그 무너지는 건물 속에서 전망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심수련과 로건 리(박은석)가 어떻게 생존했는지도 놀랍지 않다. 그들이 생존한 건 말 그대로 이 세계를 마음대로 만들고 뒤흔들고 무너뜨린 절대적인 신이 되어버린 김순옥 작가의 선택일 뿐이니까.

심지어 죽은 자를 되살리고, 갑자기 없던 쌍둥이를 연거푸 등장시키는 개연성 따윈 필요 없는 자의식 과잉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뭐가 있을까. 문제는 그래서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설정들의 남발로 그 어떤 자극의 끝단을 달리는 장면들이 등장해도 ‘무감해진’ 것이다. 헤라팰리스 붕괴 같은 대참사가 벌어졌는데도 말이다.
이 무감함은 헤라팰리스 붕괴의 뉴스 보도 장면으로도 똑같이 이어진다. 그냥 상투적인 클리셰로 붕괴라는 거대한 사건을 보도처리하고, 그 내용도 피해자들에 대한 취재장면이나 조명보다는 ‘폭탄 설치한 주단태 내부 구조 정통해...’나 ‘막대한 재산 피해, 보상 가능성 불투명’ 정도의 자막으로 처리한 것.

이것은 이 드라마가 애초 한국의 과열된 부동산과 교육의 부조리를 다룰 것처럼 그 소재를 끌어왔지만, 그건 일종의 명목일 뿐이었다는 걸 드러내는 대목이다. 붕괴 사고 영상을 지난 6월 벌어졌던 실제 참사 뉴스 영상에서 따올 정도로, 드라마는 비극에 관심이 없다. 다만 붕괴했다는 그 충격적인 장면이 주는 자극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드라마는 이미 극단으로 치닫는 사건을 통해 모두가 인지한 것이지만 애초 부동산과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 따위는 그리 관심이 없다.
드라마는 자극을 위해서라면 뭐든 갖다 사용한다. 인물을 마음대로 죽이고 또 되살린다. 건물도 붕괴시킨다. 현실의 비극도 끌어다 쓴다. 그렇게 끝까지 인물을 극악한 상황으로까지 몰고 가다 결국 허망할 정도로 엉뚱한 파국으로 처리해 버린다. 천서진(김소연)이 하윤철(윤종훈)과 심수련을 각각 아파트 난간과 절벽 끝에서 밀쳐 추락시키는 그런 황당한 일들이 마구 벌어진다. 그럴 듯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극이 되면 뭐든 벌이는 드라마의 폭주가 만들어내는 결과다.

허구이기 때문에(그것도 현실감 없는 개연성 없는 허구) 뭐든 마구 그려도 된다? 그렇지 않다. 드라마가 내적 개연성을 유지하는 건 작가(연출자도 마찬가지다)가 다른 목적으로(이를 테면 자극 같은) 전횡하는 것을 막기 위한 룰이다. 그 룰을 염두에 두지 않게 되면 드라마는 애초 기획의도와 상관없이 폭주하게 되고 심지어 이번 논란 같은 현실의 비극마저 마구 끌어다 쓰는 참사가 벌어지게 된다. 김순옥 작가야 원래 그런 사람이라 치더라도 <펜트하우스> 제작진이나 드라마국 결정권자들까지 어째서 이걸 방치하는 걸까. 드라마 관계자가 아니더라도 SBS에도 명예를 아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왜 이같은 천한 폭주를 제어하지 않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