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사곡’ 임성한이 ‘펜트하우스’ 김순옥보다 나은 한 가지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임성한이라는 이름대신 Phoebe라는 예명으로 돌아오며 그 선택도 전략도 바뀐 것일까. TV조선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2>가 펄펄 난다. 시즌1이 8%대(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기록하며 판을 벌렸다면, 시즌2는 깔아 놓은 판 위에서 그간 쥐고 있던 패를 하나씩 꺼내 보임으로써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7회부터 급상승한 시청률은 이제 11.2%로 두 자릿수까지 치솟았다.

극성을 이렇게 최고조로 끌어올린 주인공은 이 드라마 속에서 가장 큰 파장을 예고했던 사피영(박주미)이다. 남편 신유신(이태곤)이 너무나 자상한 가족밖에 모르는 애처가인 줄 알고 있지만, 이미 드러난 대로 그는 아미(송지인)라는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난 불륜남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시청자들은 그의 인면수심에 한껏 분노하던 차였다. 그런데 사피영이 남편의 실체를 알게 되는 그 지점에서 임성한 작가는 또 하나의 고통을 더 얹었다.

그건 평생 미워했던 엄마 모서향(이효춘)이 결국 암으로 사망하는 사건이다. 엄마가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사피영은, 병원에서 마침 병원에 실려 온 아미와 남편의 불륜 사실까지 알게 된 것. 충격에 충격이 더해져 함구증까지 갖게 된 사피영이 의식이 없는 엄마 앞에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가슴에 미안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손가락으로 쓰는 장면에서는 복합적인 감정들이 터져 나왔다. 분노와 회한과 슬픔, 배신감이 뒤섞인 감정들이 그것이다.

아버지가 불륜을 저질렀고, 그래서 자식조차 못 보게 만들어 그것이 원인이 되어 사고로 사망한 아버지 때문에 엄마의 그 모질음을 비난해왔던 사피영은, 엄마가 죽는 순간에 겨우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자신 또한 엄마와 똑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 분노와 배신감은 말을 못할 정도로 큰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그 충격을 엄마도 똑같이 받았으리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된 사피영의 통한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미 시즌1의 첫 회부터 어느 정도 예고된 상황이지만, 임성한 작가는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급하게 이야기를 진척시켜 드라마의 극성을 인위적으로 올리려는 그런 방식을 쓰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남편들의 불륜을 두 가지 서로 다른 관점으로 깔아 나가면서 시청자들의 감정선 또한 천천히 끌어 올려놓았다. 불륜 남편 때문에 파괴되어가는 가정과 그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아내들의 이야기, 정반대로 자신들은 로맨스라 착각하는 남편들의 이야기, 또 다른 고통을 겪는 상간녀들의 이야기 같은 걸 하나 하나 풀어나갔다.

물론 임성한 작가 특유의 ‘기막힌 상황이나 설정’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남편의 심장발작을 방치해 사망케 한 김동미(김보연)는 ‘엽기적인 인물’이었다. 친자는 아니지만 아들인 신유신에 대한 노골적인 연정을 드러내는 이 인물은, 자신의 주변을 떠도는 남편의 유령이 존재하는 걸 느끼면서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아들이 상간녀와 아이를 갖게 되자 본 며느리보다 그 여자를 며느리처럼 챙기는 판문호(김응수) 같은 인물도 있고, 마치 새 인생을 찾기 위해 이혼하자고 한 것처럼 꾸몄지만 알고 보니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난 박해륜(전노민) 같은 인물도 정상은 아니다.

하지만 임성한 작가는 이런 정상은 아닌 인물들을 대놓고 드러냄으로써 극성을 올리곤 했던 과거 ‘막장의 방식’ 대신 드라마적 장치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으로 돌아왔다. 정상적이지 않은 인물들의 심리나 뒷얘기 같은 걸로 그래도 최소한의 개연성을 마련했고, 어느 한 쪽의 관점이 아니라 양측의 관점을 바꿔가며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그 입장 차들을 설득했다.

무엇보다 달라진 건 과거 실제로 벌이곤 했던 ‘막장 장면들’을 이 작품에서는 ‘상상 신’으로 대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드라마 속 분노유발자들을 상상이 아닌 진짜로 복수하라는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지만, 이러한 상상 신으로 애써 눌러가며 끌고 가기 때문에 드라마가 진짜 막장으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때리고 싶고, 분노를 쏟아내고픈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건 마음일 뿐, 실제로는 그래도 상식적인 방식으로 상황을 대하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것.

그러면서 임성한 작가는 당했던 인물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연민이나, 그래서 그 인물이 오히려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놓치지 않는다. 불륜으로 떠난 남편에 대한 가장 큰 복수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닌가.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며 떠나버린 남편 때문에 큰 상처를 겪은 이시은(전수경)과 더할 나위 없이 젠틀하고 부유한 집안의 자제인 서반(문성호)의 예사롭지 않은 기류는 이러한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다.

한때 절필 선언까지 했지만 ‘Phoebe’라는 예명으로 돌아온 임성한 작가. 그가 <결혼작사 이혼작곡>으로 가져온 전략은 먹혔다. 불륜이라는 어찌 보면 뻔한 소재를 가져왔지만, 드라마 운용에 있어 능숙한 작가는 과거 막장의 방식으로 마구 자극적 상황을 터트리기보다는 오히려 꾹꾹 눌러가며 드라마 장치들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였다.

이 상황은 애초 <펜트하우스>의 김순옥 작가와 함께 귀환한 임성한 작가 사이에 세워진 이른바 ‘막장의 대결’이 뒤로 갈수록 역전된 이유가 되었다. <펜트하우스>가 시즌을 거듭하면서 ‘좀비하우스’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개연성 파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진 데 반해,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초반 ‘또 불륜이냐’는 비판으로 시작했지만 시즌2로 넘어오면서 그래도 시청자들의 관심과 기대를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한 때 ‘순옥적 허용’이라는 평가까지 받았지만 시즌을 거듭해가며 갖가지 비판에 직면한 김순옥 작가. 정반대로 귀환하는 것만으로도 논란이 있었지만 갈수록 시청자들을 끌어들인 임성한 작가. 그 희비쌍곡선을 만든 건 ‘최소한의 개연성’이 아닐까 싶다. 마구 써내려가는 막장이 아니라 드라마적 장치를 그나마 활용하려한 태도에서 비롯된 냉혹한 결과의 차이다. 물론 워낙 파행이 심한 <펜트하우스>를 쓴 김순옥 작가와의 비교점이 오히려 임성한 작가가 그나마 낫다는 지점을 만들어낸 면도 있지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조선, SBS]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