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 투 더 그라운드’ 침체 통해 본 야구예능의 씁쓸한 현주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길었던 팬데믹이 종식되어 가고, 야구장도 모처럼 활기를 되찾아가는 요즘, 야구하는 예능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말 새롭게 시작한 MBN <빽 투 더 그라운드>, 다음달 7일 첫 방영을 앞둔 KBS1 <청춘야구단>, 채널A에서 <도시어부>, <강철부대> 시리즈로 연타석 홈런을 친 뒤 JTBC로 이적한 장시원 PD의 <최강야구>도 상반기 방영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역순으로 소개하자면 <최강야구>는 프로야구팀에 대적할 만한 11번째 구단을 결성한다는 목표로 전국의 야구 강팀과 대결을 펼치는 리얼리티라고 한다. 레전드 중의 레전드 이승엽과 함께 박용택, 송승준, 심수창, 장원삼, 유희관, 정성훈, 이택근, 정근우, 서동욱, 정의윤, 이홍구 등 지난 10여 년 간 프로야구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KBO 스타들이 함께한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전국의 조기축구 강팀과 맞붙는 같은 방송사의 <뭉쳐야 찬다> 시리즈의 설정을 많이 참고할 것으로 예측된다.

<청춘야구단: 아직은 낫아웃>은 안정환을 일약 예능스타로 만든 2015년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의 야구버전이다. 벼랑 끝에서 선수생명을 이어가고 싶은 절실함과 간절함을 기회로 만들어주는 무대다. 이제는 방송인이라고 할 수 있는 김병현이 중심이 되는데, 예능에서 햄버거집 논란이나 허재의 딸랑이 이미지를 쌓은 그가 야구장에서는 어떤 진정성을 발휘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가장 먼저 시작해 방송을 이어오고 있는 MBN <빽 투 더 그라운드>는 은퇴한 레전드들이 다시 팀을 이룬다는 기본 틀은 <최강야구>와 같다. <1박2일>을 연출하던 KBS 출신 유일용 PD 등이 MBN 산하 예능 스튜디오로 넘어와 만든 배경도 유사하다. 김인식 감독, 송진우 코치를 중심으로 KBO의 전설을 쓴 대형 프로젝트로 양준혁, 홍성흔, 니퍼트, 김태균, 채태인, 이대형, 윤석민, 최준석 등 레전드면서 은퇴 후 방송가에서 활발히 활동을 펼치는 인원들이 중심이다.

기획하기 쉽지 않은 야구예능이 동시에 3편이나 진행되면 붐업이 될 만도 한데, 스타트를 끊은 <빽 투 더 그라운드>의 초반 반응이 영 신통치 않다. 금방 사라진 골프예능들이 쏟아졌을 때와 비교하면 화제성은 극히 떨어지고, 시청률도 1%대 초반에 머물며 고전 중이다. 왜일까. 야구예능은 기본적으로 스포츠예능이다. 지난 1년간 수많은 스포츠예능이 편성되며 전성시대가 펼쳐진 듯했으나 열매까지 맺은 경우는 JTBC <뭉쳐야 찬다>와 SBS <골때녀>가 전부다. 두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승부의 진정성을 내세웠다는 점이고, <골때녀>는 여성 출연자들을 통해 스포츠예능의 방점을 예능에서 옮기면서 그간 뿌리 깊게 박혀 있던 여성 중심 예능의 한계, 여성 캐릭터의 이미지와 역할을 일거에 뛰어넘었다.

그런데 지난해 웹예능으로 시작해 MBC에서 3부작으로 선보인 여성 야구단 <마녀들>에서 보듯 야구는 초보자가 단기간에 실력 향상이 불가능한 구기 종목이라 예능의 성장 서사와 연결하기 까다롭고, 경기가 길게 진행되다보니 예능의 호흡에 비해 느리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모든 스포츠 예능의 운명이긴 하지만 9명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승부의 당위성을 마련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빽 투 더 그라운드>는 반가움과 호기심을 자아내면서 야구 본연의 볼거리와 인지도가 담보되는 레전드들을 중심으로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일회적인 이벤트면 통할 수도 있겠지만 부와 명예를 이룬 은퇴 선수들, 은퇴했다는 사실이 더 낯선 현역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선수들이 다시 야구장에 모이는 게 반가움 이상의 감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굉장히 직관적인 설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룰 것 다 이룬 은퇴한 슈퍼스타 군단이 어떤 재기나 중년의 새 인생 등등의 구체적인 목적의식 없이 절실함 그 자체인 독립구단에 도전장을 내민다는 세계관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성장서사도 기대하기 어렵다. 해당 종목의 끝까지 가본 스타들의 도전 과제가 그리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일일 수도 있으나 비유하자면 ‘빌런’과 주인공의 밸런스가 안 맞다. 아무리 그 상대팀 국적이 일본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옛 스타를 만나는 반가움이나 종목에 대한 애호 이상의 그 무엇을 시청자들에게 줘야 감동이 되는데, 이들이 다시 그라운드에 모여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지, 그 과정에서 느끼는 공감대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외부 요인도 우호적이지 않다. 여름 스포츠인 프로야구 개막 붐과 맞물려 편성했으나 한창 진행 중인 KBO의 인기가 시원찮다. MLB도 젊은 세대의 이탈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처럼 KBO도 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인 올해를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 코로나와 맞물려 팬서비스 부재, 프로의식 부재, 국제적 경쟁력 감소 등등이 겹치며 야구 자체의 인기가 관중과 시청률 감소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야구와 같은 다 인원 스포츠를 예능과 접목하는 데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오늘날 예능 장르의 특성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사람이다. 오늘날 예능은 어떤 포맷을 사용하고 신박한 아이디어를 소재로 삼든 결국 사람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다. 관찰예능, 리얼버라이어티, 웹예능, 서바이벌쇼, 스포츠예능 등등 포맷이나 형식이 어떻든 결국 새로움은 출연자의 인간적인 매력 발견에서 나온다. 스타PD들에게 페르소나가 존재하고, 배우부터 일반인까지 새 얼굴이 예능 선수들의 자리를 대체한 이유다. 예능에선 배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일상과 방송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친근한 믿음이 스토리텔링의 원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구팀은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해 각자의 서사를 발동시키기 어려운 구조다. 게다가 <청춘야구단>처럼 명확하고 확실한 목표 아래 모인다면 모를까, 각자 활발히 방송활동을 하는 레전드 은퇴 스타들에게서 야구에 대한 꿈, 미련, 아쉬움 등의 진정성을 꺼내기엔 현실성이 떨어진다. 물론, 개인적인 큰 아픔과 가성사, 이루지 못함 꿈 등의 절실하고도 간절한 서사가 존재하지만, 배우 윤현민 등 주축 레전드 멤버들 밖에서 이야기를 꾸리다보니 부차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빽 투 더 그라운드>는 스스로 ‘레전드 스타들의 화려한 복귀를 진정성 있게 담아내는 은퇴 번복 버라이어티’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은퇴 번복의 이유를 시청자들에게 전혀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다. 출연자는 많지만 특별한 정서와 스토리텔링을 이어갈, 감정이입을 하고 신선함을 느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야기의 몰입도, 승부를 지켜봐야 하는 당위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 부분은 건너뛰고 여러 게임 등을 동원한 예능 차원의 재미로 돌파구를 만들고자 하는 흐름도 있지만, 김구라는 게임 진행에 맞지 않는 MC고, 연예인의 인맥도 예능 소재로 쓰기 어려운 마당에 프로야구 선수들의 인맥과 친분을 바탕으로 하는 유쾌한 분위기가 결정구가 될 수는 없다.

대기 타석에서 리드오프의 어려움을 지켜본 다음 야구예능들은 과연 어떤 승부수를 갖고 타석에 들어설 것인가. 쉽지 않은 싸움이 예상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N, JTBC,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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