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19금 자극으로 가득 채운 첫 방, 이 복수극 과연 통할까

[엔터미디어=정덕현] “높은 계층에 속한 당신들의 삶. 가까이 가기엔 멀지만 지름길로 안내할 열쇠는 당신의 마음. 손에 쥐는 순간 나를 태우던 지옥불에 너희 모두를 끌고 들어가리라.” tvN 수목드라마 <이브>에서 이라엘(서예지)의 엔딩 내레이션은 이 드라마가 앞으로 할 얘기의 대부분이 담겨있다. 이라엘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회사를 빼앗은 LY그룹을 무너뜨리는 복수를 꿈꾸고 있고, 그걸 하는 방법으로서 의도적으로 LY그룹의 대표인 강윤겸(박병은)을 유혹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새로울 것 없는 전형적인 치정 복수극의 서사다. 강윤겸은 이라엘이 꿈꾸는 복수를 알게 되겠지만 그보다 치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고, 그는 스스로 지옥불로 걸어 들어가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이라엘은 복수를 향해 걸어가지만 그를 도와주었던 서은평(이상엽) 역시 그에게 빠져들 것이다. 지옥불 속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이라엘과, 그 지옥불에 기꺼이 따라 들어가는 강윤겸 그리고 이라엘을 지옥불로부터 구해내려는 서은평이 서로 얽히는 이야기.

뻔한 구도의 서사인지라 <이브>는 아예 19금을 선택했고 첫 회부터 자극적인 수위의 장면들이 의도적으로 포진되었다. 일부러 강윤겸이 문틈으로 보는 걸 알면서 남편 장진욱(이하율)과 정사를 벌이는 이라엘의 유혹이 그렇고, 이라엘과 그 엄마 김진숙(김정영)이 보는 앞에서 그들의 아빠이자 남편인 이태준이 속옷 바람으로 김정철(정해균)과 수하들에 의해 끔찍한 폭력을 당하는 장면이 그렇다. 한판로(전국환)는 시작부터 제 말을 듣지 않았다며 공익제보를 한 이들을 사냥개가 물어뜯게 만드는 폭력적인 장면과 함께 등장한다.
이렇게 자극적인 폭력 장면과 이라엘의 선정적인 유혹 장면이 들어간 건, 뻔한 구도의 이야기를 자극을 통해서 주목시켜보려는 의도다. 분명하게 적을 세우고 복수에 들어간 인물을 소개함으로써 앞으로 갈 동력을 만들어내는 것. 그런데 과연 이런 선택은 <이브>에게 추진력을 만들어줬을까.

일단 시청률은 3.6%(닐슨 코리아)로, 첫 방 치고는 나쁘지 않은 수치다. 하지만 이날 지방선거 방송으로 경쟁하는 드라마 자체가 없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2회의 시청률 수치가 더 중요한 관건이 될 듯싶다. <이브>의 자극적인 첫 방의 전개가 의외로 지루하게 느껴진 면이 있었다는 건 향후 이 드라마에 대한 불안요소로 보인다.
자극에 집중하다보니 대본에서부터 연출 그리고 연기까지 다소 과장된 느낌이 적지 않았다. 특히 이라엘을 연기한 서예지는 탱고를 추거나 걷는 장면 같은 동작에서는 시선을 잡아끌었지만 막상 웃는 연기나 대사를 할 때 긴장감이 깨지는 느낌을 줬다. 이건 연기의 문제라기보다는 대본과 연출의 상투성에서 생겨난 문제로 보인다.

게다가 더 큰 복병은 이제 <펜트하우스> 같은 자극의 끝판왕을 경험한 시청자들이어서인지, 뻔한 치정복수극의 자극이 너무 단조롭게 느껴졌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식의 ‘텔레노벨라’를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이른바 ‘막장’ 또한 하나의 장르로 받아들이는 상황이 됐다. 그러니 여기서도 새로움을 요구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그저 자극적인 전개와 연출만으로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갖가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배우 서예지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편한 시선 또한 <이브>에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치정복수극에서 가장 중요한 건 복수를 하는 주인공에 시청자들이 온전히 몰입하고 응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복수를 위해 남자를 움직이려하고 유혹하려 하는 <이브>의 주인공의 모습과 서예지라는 배우에 덧씌워진 논란은 시청자들에게 몰입될수록 불편해지는 양가감정을 만들 수 있다. 과연 <이브>는 이런 난관들을 넘어설 수 있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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