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의 모든 것’ 그리고 ‘이브’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2000년 방영된 MBC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은 당시에도 큰 인기를 끌었지만, 이후 일본과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 방영됐다. <이브의 모든 것>은 어린 시절 친구이자 함께 아나운서의 길을 걷는 악녀 영미(김소연)와 선미(채림)의 이야기다. 당시 화제가 된 것은 남자주인공 장동건의 매력적인 분위기 덕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악녀 영미가 보여주는 악행이 더 화제였다.

어찌 보면 <이브의 모든 것>은 빤한 로맨스 구도의 드라마였지만, 악녀 영미를 연기한 김소연의 연기가 좋았고 영미의 캐릭터도 중심이 잘 잡혀 드라마 자체가 굉장한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반면 2022년 방영되고 있는 tvN 수목드라마 <이브>는 선악이 아닌 두 악녀의 대결이다. 둘 중 누가 더 악한 존재인가를 보여준다. 물론 주인공 이라엘(서예지)에게는 사연이 있다. 아름답지만 누군가의 아내이자 아기엄마인 그녀가 과거 그녀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복수의 대상과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라엘은 그 복수의 대상들을 만나자 평범한 가정주부의 틀을 벗어던지고 불륜의 세계로 뛰어들어 복수를 시작한다.

반면 한소라(유선)는 LY그룹의 안주인이자 정재계 가장 큰 권력자 집안의 딸이다. 그녀는 남편 강윤겸(박병은)의 사생활을 캐며, 그가 혹시나 자신을 배신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라엘은 한소라와 강윤겸 두 사람을 모두 포섭하는 동시에, 두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강윤겸을 자기 남자로 만들어버린다.

몇 줄의 시놉만으로도 흥미진진하지만 <이브>는 생각만큼 재미있지는 않다. 물론 그런 점들은 눈길을 끈다. 무겁게 가라앉았으면서도 진지한 드라마의 분위기가 있고, 이것은 과거 무조건 소리 지르고 달려드는 막장극의 텐션에 비하면 색다르고 고급스러워 보인다. 여기에 초반 에로틱 스릴러적인 요소들을 갈아 넣었다.

다만 <이브>의 이야기 전개는 생각만큼 치밀하지는 못하다. 그렇기에 막상 드라마는 진지한데, 시청자가 보기엔 코믹한 순간들이 있다. 이라엘이 뒷발 차는 말처럼 뜬금없이 탱고를 보여주는 장면 같은 것들이 그렇다.

또한 서예지의 가라앉고 차분한 딕션과 연기 역시 이라엘을 보여주기에 최적인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라엘 자체는 생각보다 매력 있고, 사연 많은 인물이다. 서예지는 주인공이지만, 이 인물의 가라앉은 분위기를 살려내려 애쓸 뿐, 딱히 드라마를 끌고 가는 여왕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빛났던 그녀는 <이브>에서도 비슷한 톤으로 연기하지만, 드라마 안에서 그저 꼭두각시 인형처럼 보인다.

배우 박병은 역시 <이브>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냉철한 한 남자가 이라엘이라는 유혹자에 무너지는 그 정서가 없다. 그냥 늘 피곤해 보이는 평범한 회사원 가장처럼 보인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이브>에서 영광의 트로피는 배우 유선에게 쥐어져 있다. 이 침잠하는 드라마에 LY그룹의 안주인 한소라를 연기하는 이 배우만이 채널을 고정시키기 위해 원맨쇼를 펼진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통쾌한 재미와 코믹 요소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이브>가 주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어울리는가는 또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이브>는 한소라를 연기하는 유선 덕에 파편적인 재미는 있다. 또 드라마의 의도와는 다르게 진지함이 ‘병맛’처럼 느껴져 뭔가 웃고 씹으면서 즐기는 맛도 있다. 하지만 흘러가는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드라마는 전혀 아니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tvN,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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