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와 시청률 모두 잡은 ‘안다행’, 정규 편성을 위해 보완할 것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파일럿 예능 MBC <안 싸우면 다행이야>는 올 여름 시작한 신규 예능 중 가장 성공적인 성적표를 거머쥐었다. 무려 8%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박을 낸 것. 사실 이 프로그램의 설정은 너무나 간단하다. 1990년대 콘텐츠만큼 방송가에 유령처럼 남아 있는 2002년 월드컵의 주역이자 방송인인 안정환과 이영표가 자연인이 홀로 사는 서해 최 끝단 무인도에 입도해 하루를 보낸다.

더구나 MBCKBS의 축구해설위원이 한 자리에서 만난다니 방송 전부터 화제가 됐다. 해설 스타일도 정반대인 것처럼 이 둘의 성향은 전 국민이 다 알 정도로 상극이다. 실제로 이번 방송에서도 밝히길 국가대표팀에서 수년간 동고동락한 사이지만 사석에서 단 둘이 식사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런 역사를 가진 역전의 용사들이 예전 EBS <용서> 정도는 아니지만 서로를 알아가고 가까워지는 시간을 하필 무인도에서 가지면서 고행이 시작된다.

이 둘은 섬에 들어서자마자 전기도, 수도도, 지붕이 있는 잠자리도 없고, 뭐든 자급자족해야 하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무인도의 열악한 기반 시설에 놀란다. 점심 먹거리를 얻기 위해선 물에도 잠시 들어가야 한다. 모든 순간이 당황의 연속이지만 두 전직 축구 선수들은 자연인의 불편한 삶을 함께 체험하면 섬 생활에 적응해간다. 귀여운 강아지, 좋은 공기와 섬 특유의 풍경, 그리고 이어지는 자급자족 생활은 <삼시세끼>보다는 <정글의 법칙>을 보는 듯하다. 산길과 절벽 바윗길, 바닷길을 어렵게 건너가 채집한 성게, 섭 등등의 풍부한 해산물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말이 안 나오는 열악한 환경에 당황했다가, 체념했다가 점차 적응해가는 과정이 주된 볼거리이며, 그 과정에서 나오는 안정환의 인간적 매력이 주된 재미 요소다.

그런데 그 인간미가 후배를 이끄는 포용의 리더십이나 주어진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진취적 기상이 아니라, 참고, 삐지고, 순간 열 받는 데서 나온다. 안정환과 이영표는 1~2년차 선후배 관계다. 지금은 함께 중년이 되면서 헐거워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때때로 사회적 문제로까지 인식되는 체육계의 강한 위계를 비트는 데서 재미를 만들어낸다. 보기와 다르게 허당이고 뺀질거리는 이영표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안정환의 고행을 지켜보는 톰과 제리의 관계가 <안 싸우면 다행이야>의 주된 볼거리다. 2002년 시절을 뒤돌아보는 추억 여행 및 비하인드 공개는 후크다.

때때로 얄밉고 능글맞고, 영리하게 말만하는이영표 대신, 끊임없이 투덜거리고 후배에게 구박을 하긴 하는데 보면 온갖 험하고 힘든 일을 도맡고 있는 안정환의 꾸밈없는 캐릭터가 웃음을 유발한다. 이영표는 태연한 척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성실의 아이콘이고 거친 말투와 달리 정말 따뜻한 사람이라서 자기에게 뭐라고 해도 괜찮다고 꿈쩍을 하지 않는다. 이런 이영표를 보는 안정환은 점점 더 갑갑해진다. 물론, 서로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한쪽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관계임에도 오랜 기간 함께해온 애정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그런 만큼, 뭐든 잘해낼 것 같은 이영표의 반전 매력도 신선하지만 푸근해진 외모만큼이나 안정환은 <청춘FC>에서 최근작인 <위대한 배태랑>, <배달에서도 먹힐까>, <뭉쳐야 찬다>까지 그래왔듯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시 한번 시청자들에게 다가간다. 캐릭터에 가식이 없고, 말에도 꾸밈이 없으면서, 누구와도 어색해하지 않고 잘 융화되며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불협화음의 미학이라 할만한 둘 사이의 화학작용은 안정환 캐릭터의 예능적 가치를 다시 한번 주목하게 만든다. 그런 만큼 무인도에서 벌어지는 특정 스토리나 일상, 미션보다 이런 관계망에 올인한 것이 <안 싸우면 다행이야>의 차별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섬 생활이나 자연인 체험하는 하는 관찰 예능인데, <삼시세끼> 어촌편, <섬총사>, <정글의 법칙> 등과 달리 놀랍게도 스토리라인이 흐릿하다. 따지고 보자. <안 싸우면 다행이야>를 보다보면 <정글의 법칙>, <삼시세끼>, <자연인>, <집사부일체>, <편애중계> 스타일의 스튜디오 토크쇼까지 여러 프로그램의 잔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정글의 법칙>, <삼시세끼>, <자연인>은 일상과는 다른 공간과 삶의 방식을 통해 로망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전달하거나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이고, <편애중계>는 스튜디오 토크쇼의 비중을 높인 관찰예능이란 특징이 있다. 하지만 이 파일럿 예능은 각 프로그램의 장점을 취하거나 정리했다기보다 여러 보기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차린 건 많지만 편식을 하면서 여러 설정과 장치가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진다. 자연인에게 초점이 맞춰진 것도, 그의 삶을 체험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도 아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어떤 미션을 완수하는 것도 아니다. 흘러가는 이야기도 없다.

스텝과 촬영장비의 존재가 시시 때때로 앵글 안으로 불쑥불쑥 들어오면서 시청자들의 몰입을 방해하고 스튜디오 토크쇼는 분위기를 살리기보다 흐름을 끊어 먹는 쪽에 가깝다. 안정환과 이영표의 관계에 조금 더 집중 할 수 있도록 스튜디오 토크를 과감히 줄이거나 없애는 등의 자신감 있는 연출이 아쉽다. 이런 어수선함 때문에 이영표와 함께함으로써 예능인으로서 안정환의 가치를 또 한 번 증명했지만, 정확히 무슨 예능인지 손에 잡히지 않는다.

무인도에 간 이유와 그렇기에 그곳에서 펼쳐질 이야기, 자연인이 말하는 은퇴 이후 삶에 대한 생각거리,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의 풍광 선사까지 담고자 하는 바는 많아 보이지만 비율을 못 맞춘 칵테일처럼 잘 섞이지 않은 셈이다. 안정환에 기댄 예능으로 만족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완성도 있는 예능이 되기 위해서는 참조 목록의 나열이 아닌,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김교석 칼럼니스트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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