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범잡2’, 피해자가 계속 피해를 입는 2차 가해의 야만

[엔터미디어=정덕현] 사건도 충격적이지만 2차 피해는 더더욱 충격적이다. tvN <알쓸범잡2>에서 서혜진 변호사가 소개한 2004년에 있었던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가해진 2차 피해는 출연자들을 모두 놀라게 만들었다.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은 2004년에 밀양지역에서 무려 44명의 고등학생들이 한 여중생을 지속적으로 집단 성폭행한 끔찍하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 가해자들은 심지어 피해자가 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피해 동영상을 촬영해 유포 협박까지 했다.

그런데 이 끔찍한 사건만큼 더 충격적인 건 이후 언론 보도, 경찰 수사, 재판 과정에서 끝없이 이어진 2차 피해 사건이었다. 당시만 해도 2차 피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 비공개 수사를 원했던 피해자와 가족 측의 요청에도 2주도 채 되지 않아 대대적인 언론보도가 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경찰이 기자에게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거기에는 피해사실이 상세하게 기록된 건 물론이고 거의 피해자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을 정도의 자세한 신상까지 공개됐다. 이런 일들이 당시에는 기자들의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경쟁적으로 보도됐다는 것. 결국 피해자는 그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수사 과정은 더 놀라웠다. 피해자 앞에 가해자 44명을 세우고 그 옆에 그들의 부모들까지 동석한 상황에서 누가 무슨 짓을 했는지를 가리키며 증언하라 했다는 것. 부모들은 자신들의 자식들이 한 짓은 나 몰라라 하면서 이 모든 것이 피해자의 탓인 것처럼 몰아세웠다고 한다. “딸자식 교육을 잘 시켰어야지!”라는 말에 놀랐다는 서혜진 변호사의 말에 권일용 교수는 “그건 조사도 아니에요, 그건 폭력이에요!”라며 분노의 목소리를 더했다.

당시 조사에는 경찰들의 모욕적인 폭언들도 이어졌다고 한다. “너희가 밀양물 다 흐렸다. (가해자들이) 앞으로 밀양을 이끌어갈 애들인데 어떻게 할 거냐? 내 딸이 너처럼 될까 봐 걱정이다.” 이런 말을 서슴없이 했다는 것. 그 말에 윤종신은 믿기 힘들다는 듯 “2004년이 이 정도로 야만의 시대였나요?”라고 되물었다.

“이것은 회복될 수 없는 경찰의 횡포고요. 모조리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권일용 교수 역시 단호하게 이 2차 피해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들 2차 피해를 준 가해자들(수사관들)은 자신이 피해를 줬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자세한 내막도 모르면서 그렇게 얘기하지 말라고 지금도 생각할 수도 있어요”라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놀랍게도 2차 가해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가해자 44명 중 형사처벌을 받은 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거였다. 합의 등을 통해 ‘공소권 없음’으로 끝났다는 것. 그런데 그 합의에도 문제가 있었다. 미성년자인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이었던 아버지가 어려서부터 지속적인 가정폭력을 해왔던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가 대신 합의를 한 일이나 또 합의금이 피해자에게는 한 푼도 가지 않았다는 건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재판부도 2차 피해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죄질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가해자들이 인격이 미성숙한 소년이기 때문에 교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심지어 판결문에는 “피해자가 현재 충격에서 벗어나 학교생활을 하는 점 등을 참작했다”는 글귀를 넣었다. 사실은 완전히 달랐다. 피해자는 전학을 갈 수밖에 없었지만 받아주는 학교도 없었고, 겨우 타 지역으로 전학을 가서도 가해자 부모가 찾아오는 일로 그 학교 역시 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사실상 2차 피해라는 중대한 사안에 대한 경각심을 깨운 사건이 됐다. 그래서 2019년에 ‘2차 피해’가 법률적으로 개념이 정의됐다고 한다. ‘수사 재판 언론 보도 회복의 전 과정에서 일어나는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차별, 폭언, 따돌림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2차 피해를 정의한 것. 물론 지금은 2차 피해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대중적인 인지가 생겼지만 서혜진 변호사가 제기한 여전한 의구심은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과거보다 법제도는 많이 좋아졌지만 피해자들이 받는 고통이나 부정적인 인식이 그렇게 많이 달라졌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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