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 훼손한 ‘골때녀’ 조작 사건, 뭐가 문제인가 하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연말 시상식 시즌, 하필 크리스마스이브에 예능 팬들에게 악재가 터졌다. 국가수보다 유능하다는 네티즌들은 올해의 예능이라고 할 만한 SBS <골 때리는 그녀들2>이 조작 방송을 했다며 증거를 내놓았다. 극찬을 받을 때도 작은 의구심으로 남았던, 모든 구기 종목에서 하는 진영 바꾸기가 없고 모든 스포츠 중계에 필수로 들어가는 경기 시간을 공개하지 않는 사실 등 몇 가지 이상 징후와 맞물려 추리의 설득력은 점점 높아져갔다. 결국 제작진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과문을 통해 조작했음을 시인했다. 시청자들의 손에 쥔 땀과 카메라 밖에서 흘린 출연자들의 땀은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골때녀> 조작 사건’으로 기억될 이 사건은 얼마 전 엠넷의 경연예능이 사법처리 대상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예능 제작진의 자기 과신이 드러난 사례이며, 무엇보다 현업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들이 오늘날 예능의 본질에 대해 여전히 몰이해하고 있었던 결과다. 비난을 하고 폐지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할 수 있는 주장이긴 하나, 건설적인 과정이 되길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에 예능의 본질, 왜 조작(그들은 편집 순서를 바꿨다고 주장하고 스토리텔링이라 믿는)을 하면 안 되었는지에 대해 한 번 더 짚어본다.

예능이란 장르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리얼리티’다. 지난 약 15년 간 진화한 결과다. 토크쇼에서 경연예능까지, 리얼버라이어티에서 관찰예능까지 인수분해를 해보면 남는 건 리얼리티다. 코미디, 웃음, 감동, 재능 모든 건 리얼리티라는 범주 안에 속한다. 공개코미디 개그맨들의 절실함, 유재석의 콩트를 베이스로 하는 캐릭터쇼에 대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예능이란 장르의 개념과 원하는 재능이 바뀌었다. 개그맨들에겐 방송국이 점점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는 원인이고, 연말 예능대상 시상식이 시청자만 어이없는 전파낭비가 아니라 생방송 중 무대에 오른 당사자들조차 난감해진 이유다.

다큐 제작에도 마사지가 들어가듯이 예능에서 리얼리티란 그냥 카메라를 비춘다고 존재하지 않는다. 관련해 초창기 <놀면 뭐하니?>의 실패 사례가 그 증거다. 리얼리티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정교하게 구축된 스토리텔링이 필수다. 이를 위해 방송국 스튜디오가 아닌 일상이나 로망이 반영된 공간을 무대로 삼고 캐릭터가 아닌 인간미가 발견될 단서를 심어둬서 몰입의 단초를 마련한다.

이는 최근 다시 경연 예능이 각광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스토리텔링과 결합한 리얼리티 콘텐츠기 때문이다. 어떤 인물이 발견되고 성장하고 함께 바라던 꿈을 이룬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2020년대의 예능의 로그라인이다. 그 안에서 PPL과 이벤트성 전시가 더해지기도 하지만, 대리만족, 정서적 공감의 효용을 이끌어내는 리얼리티와 이를 풀어가는 스토리텔링은 오늘날 예능의 재미를 이루는 본질이다. 요즘은 이를 줄여서 진정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예능은 스포츠에 비유하자면 각본을 미리 쓰고 연기하는 스포츠 드라마나 영화보다는 스포츠 중계에 가깝다. 하물며 스포츠예능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 진정성의 담보다. 박진감과 긴장감도, 몰입하게 만드는 성장 서사도, 미보다 멋을 추구하는 멋진 출연자들의 승부욕도, 프로팀을 감독하는 것처럼 최선을 다하는 국대 출신 감독들의 열정도 모두 진정성에서 발원된 거라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런데 맙소사, 재미를 위해서 결과는 두고 편집의 순서를 바꿨다고 한다. 조작이란 말을 순화해 풀어쓴 문장이다. 예능적 재미와 스포츠의 진정성을 놓고 저울질한 안일함이라고 한다. 예능적 재미에서 진정성이 갖는 절대적 의미를 여전히 몰이해하고 있다는 인정이거나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있다는 뜻이다. 파일럿부터 시즌1, 시즌2로 거듭 스케일업을 하면서 성공의 크기도 키워갔고, 최근 방송은 평일 밤 예능임에도 전국시청률 9.5%를 달성했다. 운동하는 여자들이라는 트렌드와 화학작용을 일으켰고, 엠넷의 <스우파>와 함께 2021년의 경향을 만들어냈다. 제작진은 자신들의 스토리텔링이 이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하고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결과가 쌓이면서 얻어지는 게 스포츠의 서사다. 모든 게임이 원사이드게임이 나오지 않도록 재밌게 흘러가야 한다는 강박은 이해하겠지만 리얼리티를 만드는 방식으로의 스토리텔링과 스토리텔링으로 리얼리티를 주조하겠다는 발상의 격차는 팬데믹 이전과 이후의 세상만큼이나 큰 격차다. 즉 오만함과 무지함이 결합한 참사다. 스포츠 윤리의식도 없을뿐더러 예능에서 진정성을 조각할 수 있다는 발상은 시청자들에 대한 무시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시나리오를 쓰고 수십 대의 카메라로 찍은 영상의 시간 순서를 뒤죽박죽 편집하는 것보다 훨씬 손쉬운 방법이 미리 승부 결과를 짜는 승부조작인데 이에 대해 어떤 보장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시청자 입장에서 예전처럼 마음을 열기가 어렵다.

SBS 예능국은 예전 유사한 사례를 겪은 적이 있다. <정글의 법칙>이 전성기에서 급강하하게 된 계기가 바로 리얼리티의 훼손이었다. 물론 그 이후에도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신선함이나 생존이란 원초적 로망의 충족이란 초기 <정법>이 내세운 가치는 무너졌다. 다만, 그때는 시청자에게 굳이 알릴 이유가 없던 카메라 밖 울타리가 들통 나면서 리얼리티를 침범한 경우라면, 이번에는 보다 본질적인 울타리 자체의 훼손이다.

팬데믹의 시대, <골때녀>와 <스우파>를 통해 예능에서 새롭게 감지되는 가치는 사람 사는 모습이 다 비슷비슷하다는 관찰예능의 위로의 정서나, 로망을 제시하는 나영석 사단의 예능의 코드를 지나 애쓰고 사는 모습이 멋으로 발견된다는 데 있다. 시청률 수치로만 따지자면 손흥민의 경기도 안 보는 사람들이 아마추어 여자 풋살 경기를 보는 것은 ‘축구’ 때문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무언가를 내 안에 남기고 싶은 것을 예능에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재밌는 게임을 보는 게 아니라 무언가 속에서 끌어 오르는 힘을 느낀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열정과 성장을 피부로 체감하는 대리만족이다. 그런데 그들이 땀을 흘리는 경기장이 조작에 이리도 무신경하게 방치되어 있었다니 맥이 풀릴 수밖에 없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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