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때녀2’, 폐지보다 “미워도 다시 한번”을 지지하는 까닭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듣’고 ‘보’고 ‘잡’담하기)] 감동이 컸던 만큼 실망의 골도 깊어 보인다.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 시즌2>(이하 <골때녀2>)가 조작 논란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2일 방송된 FC구척장신과 FC원더우먼의 경기가 방송에서 본 대로 점수가 난 것이 아니라 골 순서를 바꿔 편집한 사실이 시청자들의 문제 제기로 드러났다.

이날 방송 후 의혹이 커지자 제작진은 24일 문제를 시인하고 사과했지만 논란은 크리스마스 주말에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이 경기는 방송에서 3대 0으로 FC구척장신이 전반 리드하다가 후반 들어 3대 2까지 FC원더우먼이 쫓아가면서 짜릿한 승부의 진수를 보여줬다. 이어 4대 3으로 간발의 리드를 이어가다 최종 6대 3 FC 구척장신의 승리로 끝났지만 실제 경기는 이미 전반에 5:0까지 벌어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의 묘미를 높이기 위해 골 순서를 바꿔 편집했고 이런 일은 이 경기만이 아니라 이전에도 존재했다고 제작진은 사과문을 통해 털어 놓았다.

제작진은 사과문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예능적 재미를 추구하는 것보다 스포츠의 진정성이 훨씬 더 중요한 가치임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밝혔다. 이번 조작 논란이, 리얼로 보이는 예능에서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대본과 편집 개입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한 결과라고 해명한 것이다.

제작진 사과가 있었지만 시청자들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하고 폐지를 주장하는 등 크게 분노하고 있다. ‘예능에서 제작진의 의도에 따른 편집은 기본’이라는 너그러운 여론도 일부 있었지만 스포츠를 다루는 예능이기에 이런 제작진의 개입은 문제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골때녀2>는 이날 방송에서 시청률 9.5%(이하 닐슨코리아)를 기록하는 등 시청률이 계속 상승하면서 10% 돌파를 앞두고 있었다. 최고 인기 예능 중 하나일 뿐 아니라 비인기 종목인 여자 축구를 예능으로 잘 소화해 2021년을 대표하는 예능으로까지 꼽히고 있었다.

뜨거운 반응의 이유는 진정성이었다. 처음 해보는 축구에 서툰 여성 연예인들이 자신의 개인 시간을 바쳐 연습하고 경기에서는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내던지는 열정과 투지를 보이면서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골때녀2>의 앞날은 어찌될까. 제작진의 사과에 이어 27일 SBS는 담당 PD와 책임 PD를 교체하는 징계와, 재정비를 위해 이번 주 방송분을 결방하는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분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폐지 요구 강경론자부터 ‘실망해서 앞으로는 봐도 이전만큼 재미가 없을 듯하다’는 마음 뜬 온건파까지 다소 강도 차이는 있지만 질책은 일관되다.

방송에서 조작 문제가 발생하면 프로그램 폐지가 가장 확실한 대처다. 그런데 <골때녀2>는 폐지로 잘못에 대한 징계를 내리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존재한다. 방송사와 제작진은 폐지라는 벌칙을 받아도 할 말 없어 보이지만 <골때녀2>의 출연자들을 생각해보면 결론이 좀 복잡해진다. 경기 중계를 맡은 배성재는 제작진의 조작을 묵인한 동조자와, 경기 관련 멘트를 후시 녹음으로 모르고 제공한 피해자를 오가며 곤욕을 치르고 있다. 무엇보다 경기만 열심히 뛰었던 선수들은 폐지라는 벌을 함께 받아 마땅한 상황인지도 혼란스럽다.

물론 골 순서 조작으로 인한 극적인 전개가 <골때녀2>의 인기 상승에 기여하면서 출연자 본인들도 주목을 더 받는 이득을 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연습과 경기에 진심을 다하고 있던 출연자들에게, 제작 방향에 반하는 의견 제시가 쉽지 않은 방송 현실에서 조작에 저항하고 개선하지 않았다고 방송사, 제작진과 같은 처벌을 받게 하는 일 역시 적절한지 판단이 어렵다.

근본으로 돌아가 보면 <골때녀2>의 인기는 선수들의 진정성에서 비롯됐다. 조작의 결과였던 승부의 짜릿함은 도우미 역할을 했을 뿐이다. 선수들의 몸놀림이 보기 엉성하고 경기 내용은 지루했던 방송 초반에도 시청자들은 선수들의 고군분투하는 모습 때문에 <골때녀>를 열렬히 응원했다.

이번 조작 사건에서 경기 내용의 진정성은 훼손됐지만 출연자들의 축구에 대한 진정성은 여전히 그대로다. 결국 방송사와 제작진의 조치가 폐지에 못 미치는 수준이더라도 방송은 유지되는 것이 출연자들을 피해자로 만들지 않는 길이 될 수 있을 듯하다.

그렇다고 출연자들이 좋기만 한 일도 아니다. 방송이 폐지되지 않고 계속된다고 해도 편집 조작으로 <골때녀2>에 대한 애정이 식은 수많은 시청자들을 마주해야 되기 때문이다. 출연자들의 여전한 진정성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보장할 수 없다.

신뢰를 일단 잃고 나니, 이번에 확인된 경기 순서 편집만이 아니라 골이나 승부까지 조작하지 않은 것인지 의심은 프로그램 곳곳으로 번져나가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폐지가 되지 않더라도 <골때녀2>의 앞길은 험난하다. 새로 투입될 <골때녀2> 제작진들에게는 성난 팬심을 설득할 명분과 진정성을 담보하는 재미를 단시간 내에 모두 잡아야하는 숙제가 주어진 셈이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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