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알고 있었으면서... ‘골때녀’ 후폭풍 심상찮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고 감독들도 열심히 했다. 경기 전 훈련도 제대로 했다. 최선을 다한 결과를 가지고 PD님, 스태프들이 재미있게 구성한 편집이라 생각했다.” SBS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 조작방송 사태에 대해 감독으로 참여한 김병지는 이런 해명을 내놨다. 사실일 것이다. 근육이 터지고, 절뚝거리면서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경기 끝에 보여준 승리의 환호와 패배의 눈물... 선수로 뛴 출연자들의 그 모습이 어찌 거짓이라 볼 수 있을까.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의 성장을 위해 손수 나서 훈련을 지도했고,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독려하기 위해 외친 그 목소리들은 분명 진심이 담겨 있었다. 특히 선수들과 경기 외적으로도 교감하며 그들의 남다른 땀과 눈물을 토닥여준 감독들이 아니었던가. 방송을 봤던 시청자라면 제아무리 조작방송 사태가 드러났지만 그런 모습들까지 거짓이라 치부하긴 어려울 게다.

하지만 김병지의 해명은 시청자들이 <골 때리는 그녀들>에 왜 열광과 응원의 목소리를 냈던가를 들여다보지 않은 말이다. 시청자들은 예능적 재미 때문에 <골 때리는 그녀들>에 열광한 게 아니었다. 축구 실력은 아직 출중하지 못하더라도 이들이 축구라는 스포츠를 대하는 자세가 진심이라는 점 때문에 시청자들은 이들을 응원했던 것이었다.

결국 이 해명이 말해주는 건 오히려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 또한 조작 편집을 다 알고 있었으면서 방관했다는 사실이 주는 실망감이다. 그 첫 번째 실망감이 스포츠 중계를 해왔던 배성재 아나운서에게 불똥으로 튀었고, 그 다음은 이 프로그램에서 팀을 맡았던 감독들에게 튀었다. 그리고 이렇게 가다가는 경기를 뛰었던 출연자들에게도 불통이 튈 기세다.

배성재 아나운서와 감독들에 대한 실망감이 먼저 터져 나온 건 이들이 다름 아닌 스포츠 특히 축구에 진심이어야 할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편집에 의해 경기 내용이 다르게 방영됐다면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막았어야 할 그들이다. 하지만 김병지의 해명 속에 담겨 있듯이 이들은 축구에 대한 진심보다 ‘예능적 재미’로서 <골 때리는 그녀들>의 조작방송을 묵인한 셈이 됐다. 이를 어떻게 시청자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렇게 출연자들에게로 향하는 불똥들 속에서, 정작 이 사태를 만든 제작진은 슬그머니 뒤로 빠져 있는 모습이다. 물론 제작진이 나서서 공식 사과를 했고, 거기에는 출연자들은 무관하다는 이야기도 담겨 있었지만 그것으로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다. “땀 흘리고 고군분투하며 경기에 임하는 선수 및 감독님들, 진행자들, 스태프들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편집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향후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게 하겠다.” 재발방지 정도를 담은 공식사과는 시청자들의 분노에 불씨를 당겼고 그 불똥은 이제 출연자들에게로 튀고 있는 중이다.

출연자들에 대한 실망감도 적지 않지만, 그보다 방송 전체를 책임지고 어떤 선택들을 하는 제작진이 이 사태를 일으킨 근본적인 장본인들이다. 방송사가 나서서 제작진과 해당 방송에 대한 분명한 책임 추궁과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래야 적어도 개인적인 시간까지 투자해 몸이 다치는 것조차 아끼지 않고 뛰었던 출연자들이 보여준 진심만은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이대로 두다간 어디로까지 불똥이 뛸지 그 후폭풍이 심상찮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유튜브,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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